'복수'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1.11.28 잊을 수 없는,
  2. 2011.09.02 어떻게든,
  3. 2010.10.10 가면극, 복수극
  4. 2010.07.13 의미 1
  5. 2010.05.02 이해
  6. 2009.11.04 자만
  7. 2009.10.31 기쁨
  8. 2009.07.01 복수, 희생 2
  9. 2009.05.18 가면, 이면
  10. 2009.02.12 복수, 속죄 1
또 하나의 끝. 그리고 그 3 번째의 날.
그 모순을..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죽어가는 감정들만큼.. 실감 또한 죽어간다.
생의 실감이 없다는 말은 분명 그 변명이겠지.
실감이 없어도 괜찮아.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을테니.
허무로부터 얻는 것이 허무 뿐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채울 수 있는 그릇조차 없었으니까.

그것이 당연한 일,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구원..
그걸..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다시 심장이 죄여온다.

나는.. 용서받지 못하니까.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죽여왔어야만 했던 걸까.
그거 알고있어? 그 한 마디, 한 마디 따뜻한 위로가 날 죽여가고 있었다는 걸..
그 빛이, 그 미래가.. 나의 환상일 뿐이었다면-
지켜주지도 못할 그 환상들을.. 왜 내게 보여준거야..

그렇기에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 증오를, 그 허무를..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어.
존재하는 것조차 용서할 수 없었기에 지우려고 했던.. 그 증오의 절실함을.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따스함을 죽여야만 했었던 절망을.
당신들이 보여주었던 환상이, 그리고 그것이 깨져버린 거짓의 추악함이 얼마나 날 목졸라왔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기쁘다고 말해주었던 그 순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소중하다고 했었던 그 말이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 상냥함이 얼마나 나의 희망이 되어주었는지..
당신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지금은 비록 그저 껍데기일 뿐일지라도, 흉내라고 하더라도.. 괜찮아.
살을 찢는 차가운 고통과 나를 태우며 흘러내리는 피는 최소한 내겐 환상이 아닐테니.
무엇이든 죽여왔다면, 그 환상마저도 죽이면 돼. 그 위로마저도 죽이면 돼.

잊지 않았겠지? 한 번 죽어버린 건,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자신을 죽여버린 나는.. 나를, 그리고 당신들을 용서한 적이 없어.
Posted by sey :
나는 내가, 무섭다.
스스로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분명 알고있다.
알고있으면서도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있으면서도 그걸 어떻게든 해낼 자신이.. 무섭다.

생각해보면, 그토록 절실히 바래왔던 복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겠지.

나는, 이렇게 어쩔 수 없을만큼 망가졌지만.
어차피 실감조차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떻게든, 무의미한.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지 않으니.
Posted by sey :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병적인 욕망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무언가를 죽이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존재의의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 충동만이 남은 강박.
그걸.. 대체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끝날지라도, 그걸로 괜찮았던 거냐.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지만.. 너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이제는 행복해져도 된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죽지않고 살아남았으니까 그걸로 된거냐?

이면은 죽었다. 내가 아니라, 오직 이면만이.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그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왜냐면, 병적으로 죽음에 집착했던 건 이면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는 나를 죽이려는 충동만이 잔류해.
당신들이 그렇게 비난하고 죽여없애려고했던 이면이 죽었는데도, 왜 나는 그대로인 걸까.
나는.. 여전히 당신들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이상하잖아, 그건.
어쩌면 죽었어야 할 쪽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던 출발선으로 돌아왔을 뿐.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멈춰서서 죽어갈테니.
운 좋게 일시적으로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을지라도
결국은 또 같은 결말을 향해갈 뿐이야.
나를, 죽인다-는.

뻔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겠지.
아아, 고결하신 당신들께서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있는 모양이지?
이미 그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버린 죽음의 관념을, 이제와서 바꾸라고?
그거 알아?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아무런 합리적인 동기나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
틀렸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어.
왜냐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도, 최소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겠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까.
그저 나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 넣어두고 안식하며 부정해버리면서.
너희들은.. 알고있었으면서도 막지 않았던, 나와 같은 공범이야.

그렇게 또 다시 나는 가면과 이면으로 어긋나서
복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를 죽일 거다.
그 쌓여가는 증오로 또 언젠가는 이 충동에 저항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찾아오게 되는 그 불안의 소멸을,
내가 바라는 안식이라는 건.. 그것 뿐임을.

죽기 전까지 끊나지 않을 가면극이자, 복수극.
이번에도 내가 죽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언젠가 내가 죽을 수 있을 때까지 이 반복은 끝나지 않을테니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칼날을 밀어내고, 튀긴 피가 벽면에 새겨질 뿐.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칼날을 흐르는 피가 투두둑 떨어진다.
...다시 밀어낸다. 또 밀어낸다.
이제는 예전처럼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도 없다.
알고있으니까.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저 난, 침묵하며 방관할 뿐.

이제서야, 두 번째에서야 알 것 같다.
이런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그런 길을.. 같이 걸어가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실망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누구라도 그럴테니까.
한 가지.. 조금 슬픈 게 있다면,
오직 사람만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겠지..

하하, 타인에게서 의미를 찾는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Posted by sey :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다, 는 건.. 기억조차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난, 살아있었던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난 이렇게나 버려져있는 걸까.

기억들이 이질적이라고 해도, 단 하나 유일하게 실감을 느끼는 게 있었다.
단 한 번 뿐일지라도, 내가 살아있었다고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순간.

그건, 나의 끝이라고 믿었던 시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행동했던 그 시간은
아직도 뇌리 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삼켜낸 한 알, 한 알에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으니까.
오직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을 것이라는 안도감만이 있었을 뿐.
어차피 처음부터 나에겐 누구도,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잖아.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죽음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결국 실천해버리겠지.
또 다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련도 없이.. 한 순간에.
이미 한 번은 버린 자신이기에, 두 번도 버릴 수 있으니까.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원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보답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함께' 라는 기적과 그 소중함만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포기했는데, 애써 외면했는데..
그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도 바랬던 소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고통을.. 이어가라고, 말한다.

꿈을 꿨다.
꿈이라는 건.. 희망이라는 건,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이었니까.
내가 바랬던 그 순간까지만은 살아갈 수 있도록.
비록 나는 빛날 수 없을지라도.

꿈을, 잃어버렸다.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마저 잃어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거니까.
죽기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잃어버렸으니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는 의미조차도.

이제서야 알 것 같아.
그 죽음의 의미를, 그리고 그 복수의 의미를..
난 언제까지고..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이게.. 네가 진정으로 원한 거였지?
끝나지 않아.. 꿈을 꿀 수 없어..
살아갈 수가 없어..
Posted by sey :



그건, '거짓' 이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끊임없이 나를 죽여가며 얻어낸.. 공허한 가면극.
어차피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처음부터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처럼 착각하고 공감하는 연극처럼
가면이라는 연출로도 당신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어차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당신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러니까.

내가 같이 죽어달라고 했냐?
같이 피를 흘리고, 상처를 내자고 했냐?
아니잖아. 그런데 왜 당신들은 내게 자꾸만 강요를 해?
왜 자꾸 날 없애려고 해?

내가 어떤 기분으로 나를 그어내는 지,
그럴 때마다 잔류하는 죽음이라는 강박과 고통이라는 공포를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
언제나 형식적인 질문과 답이 오갈 뿐, 결국은 무엇 하나 직시하지 않아.
일방적인 걱정이라는 보살핌 속에서 나는, 이렇게나 망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 누구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어.
지식으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한다는 그 상냥한 거짓말을 경험한 이제는 알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속일 수 밖에 없는 거야.
그걸로나마 당신들 혼자서만은 타협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상처내도 상대가 인식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내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그렇게 당신들은 내 가면만이 '나' 라고 착각하고 그거에 만족하면 돼.
아무리 상처내고 피를 흘려도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만족해온 것처럼, 그렇게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다시 한 번 죽어줘야 만족할 당신들이니까.

언젠가 당신들은 내가 변하길 원한다고 했었지.
좀 더 밝은 방향으로, 과거에서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기를.
하지만 그게 당신들과는 무슨 상관인데.
내가 변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기뻐할 거라는 헛소리라면 집어치워.
그래서 뭐가 기쁜 건데? 기쁜 게 있기는 하냐?
아니면 자기만족인가? 죽어 마땅한 쓰레기 한 명의 인생을 구제해주었다는.

이해할 수가 없어.
웃으면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당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
당신들이 원하는 건 나와의 공존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가면 뿐이니까.

그런 가면 뒤에서 내 연극에 함께해준 당신들을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 모를테지.
내가 얼마나 당신들을 증오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끝날 거라고 생각해.
그 타인이라는 존재에 수 없이 절망하고 환멸했던 나 또한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사라져갈 거라는 걸..

그래, 당신들과 나, 우리들이 키워 낸 증오가 결국 날 잠식해가는 거야.
'가면' 과 '이면' 이라는 모순으로.. 또 저주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엾고 역겨워서
하루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Posted by sey :


-즐거웠어?
복수를 멈추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스스로를, 타인을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만이.
...봐, 그 결과가 이거야.

-말했었지.
타인보다 우월할 수 없다면, 내가 죽여버리겠다-고.
자만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거라고, 경고했을텐데.
...이제는 '복수'라는, '살인'이라는 증오가 장난처럼 들리냐.

너.. 그럼, 다시 깨닫게 해줄게.
걱정마,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걸 미친 듯이 후회하게 될테니.


    ...다시 한 번, 살아있다는 사실을 저주하게 만들어 줄게.
                                                                                ┘
Posted by sey :


...다시 일 년, 만이지.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하는 건.

칼을 잡을 때마다 생각한다.
정말로 이제는 팔을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팔을 잠식하는 고통을.
...결국, 나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상처를 낸다면 한동안 왼팔을 쓰진 못하겠지.
아니, 어쩌면 인대를 건드려서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기억하고 있잖아? 투두둑- 하면서 무언가가 끊어져가는 느낌을.
이미 한 번은 근접했던 정도라면 이번이라고 해서 못할 건 없으니까.

...무섭냐? 그렇다면 이대로 칼을 내려놓아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
아니, 사람들은 네가 상처를 내려고 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걸.
하지만 잊은 건 아니겠지.
칼을 내려놓는다면, 넌 그저 쓰레기일 뿐이라는 걸.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신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살아갈 자신도 없는 주제에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렇다면 남아있는 건.. 자신을 죽이는 것 밖엔 없잖아..

칼을 다시 고쳐 잡고 앞으로 몸을 덮쳐올 끔찍한 고통을 기다린다.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는 없으니까.
그리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팔이 떨린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며
벌어진 상처 사이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시야에 붉게 스며온다.

그런데 왜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까.
한 번도 소리내서 웃어본 적이 없는데, 왜 숨죽여 웃고있는 걸까.
거울에 비친, 나는 고통스럽지만, 기쁘다.
괴로움에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지만, 그래도 기쁘다.
...나는 이걸로 조금이나마 더 내 죽음을 앞당길 수 있으니까.
살아갈 자신이 없는, 가치 없는 내 삶을 조금이나마 더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기뻐야만 해..
Posted by sey :

복수, 복수, 복수.
복수를 한다고.. 언제나 그럴 듯하게 지껄이기만 할 뿐이지, 넌.
가면을 쓰고, 그 가면으로 평생동안 타인을 속이는 것이 네 복수의 전부냐?
그렇다면 단지 그것만을 위해 지금까지 잃어온 것들은 대체 무슨 의미인건데?
아니, 애초부터 그런 걸 '복수' 라고 말할 수나 있는 건지.
만약 네 복수가 겨우 그 따위 것 밖에 되지 않는 거였다면,
복수라고 말하는 그 입부터 찢어발겨줄게.

가면을 쓰는 게 복수라고? 하하.. 이 병신 새끼가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약 처먹고 깨어나서 한동안 편하게 지내더니 이젠 아예 살만한가봐?
복수하지 않는 너는, 피를 흘리지 않는 너는 살아갈 자격이 없어.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인이니까.
하다못해 그 죄를 속죄할 수 있도록 기꺼이 스스로를 죽일 기회를 주고 있는데
그걸 거부한다면 너는 그저 악취나는 오물일 뿐이야.

네가 왜 나약한 줄 알아? 증오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기억해봐. 복수에 미쳐있던 과거의 너는 누구보다 강했어.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은 어떤 것 같아?
이제와서 미안하다며 또 다시 타인의 따뜻함을, 손길을 구하려고 하지.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돌아오는 건 침묵 뿐이야.
왜? 지금이라면 그때처럼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주제에.

소중한 것을 스스로 버려야 했던 그때를 다시 반복하고 싶냐?
나약한 것은 죄니까, 그 죄값을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들로?
또 다시 타인이란 존재에 의지하고, 손을 내밀며 잡아달라고 빌거냐?
그러고 싶다면 한 번 그래봐. 누가 네 손 따위 잡아줄 것 같냐?
쓰레기 같은 개새끼 주제에. 부탁이니까, 그만 좀 뒈져주면 안될까?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당신이 희생해.
그래, 점점 날 의지하게 만들어서 내가 아니면 안될 때까지. 철저하게 가면 놀이를 해줄게.
구토가 나올 만큼 역겨워도, 당장이라도 목졸라 죽여버리고 싶더라도
당신 앞에서의 내 가면은 웃고 있을테니까.
그렇게 서서히 당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주겠어.
그리고 마지막에 내게 도움의 손을 내밀 때, 그 손마저도 잘라버릴테니까.
맞아, 당신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해줄거야.
그때쯤이면 아무리 병신 같은 당신이라도 깨달을 수 있겠지.
당신이 살아온 궤적이라는 게,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의미한지.
길지는 않겠지만, 내 발밑에서 그때까지 살아왔다는 죄를 뉘우칠 시간은 있을테니.

아아, 내 수고가 덜도록 도중에 자살이라도 해주면 고마울텐데 그건 기대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자각조차 못하고 있으니까.
그걸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그런 개 같은 낯짝을 들이밀고 있지는 않을테니.
둔한 건지, 아니면 삶에 대한 미련이 넘쳐 흐르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였다면, 숨쉬기조차 미안할텐데. 하하, 미안. 당신한테는 그런 죄의식조차 없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죄인 당신 따위가 무슨 죄의식이 있겠어.

웃기지 않아?
내가 그토록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나는, 당신을 닮았어.
나는 나를 혐오하니까, 당신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언젠가 당신이 내게 말했었지.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그래, 살아있어서 죄를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는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난 당신처럼 역겹게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었으니까.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야.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증오로 가득 찬 나를 보지 못하고
내 빌어먹을 가면만을 보는 당신의 우둔함이 또 그래.

그건 나의 죄일까. 아니면 당신의 죄일까.
그러니까.. 당신이 내 복수를 막을 수가 없는거야.
그러니까..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당신에게 복수하겠어.

Posted by sey :

다시 깨어난 그날, 그곳에 이미 너는 없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서로를 죽이려 할 뿐이었을 우리는
이제는 그렇게.. 과거라는 단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괴로운 기억이 되어버렸다.
나를 대신하여 희생한 너에게도, 대신 살아남은 나에게도.. 모두.

가면이라는 복수와, 이면이라는 광기.
어느사이엔가 우리들은 서로를 그런 이름으로 불렀다.
원하지 않았어도 필요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너와 나는
그렇게 가면을 통해 타인을 속이고 복수하며, 이면을 통해 서로를 죽여왔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나날들이 괴로웠어도,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언젠가 죽음이라는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그리고 그건.. 저주이기도, 동시에 구원이기도 했다.

항상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언제나 나에게는 '너' 라는, '이면' 이라는 죽여야 할 대상이 있었으니까.
그건 결과적으로 증오하는 것도 대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혼자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 타인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이면이라는 네가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면서도 내게 양보했던 미래이기에.
나는 네 행복을 대신할 만큼의 미래를 가질 수 있을까.
혼자서 짊어지는 희생의 가치가 너무나 무거웠다. 혼자라는 것이 괴로웠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좋았을텐데.
아니, 어쩌면 거절당하는 것을, 뿌리쳐지는 것을 몰랐다면 더욱더.
그렇게 또 다시 과거의 어긋남을, 반복을 현재에서 바라본다.

이면을 잃고 혼자서 살아가는 나날들.
나를 부정하는 현실만이 가득한 곳에서,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쳤다.
경멸받지 않기 위해, 나를 경멸하는 타인을 부정하지 않았다.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면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결과를 가지고 싶었다.
결과를 가질 수 없다면, 결국 너의 희생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릴테니.

하지만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약해빠진 나는 혼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항상 '이면' 이라는, '살인' 이라는 힘을 빌려왔었기에.
나를 죽이고 또 죽여가며 뒤쳐지지 않기 위해 몰아세웠다.
스스로가 정한 최소한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럴 때마다 광기로 뒤틀려버린 '이면' 을 이용해 어김없이 피를 흘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빛나는 당신들 속에서 서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채, 한 순간도 살아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면' 이 없었다면 쓰레기인 지금에조차 이르지 못했을테니.

'이면'을 잃어버린 지금의 나는 조금도 나아갈 수가 없어.
타인으로부터, 현실로부터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떠한 결과조차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다시 혼자서 걸어가야하는데,
혼자서는 할 수 없는데, 아무도 없잖아.
돌아오는 건 말 없는 침묵 뿐이니까. 언젠가는 그렇게 또 나를 버릴테니.
이제 기대하는 건, 아픈 건 충분하잖아.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새로운 '이면' 을 필요로 해.
그건 언젠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그때도 이면을 선택할 것이라는,
복수를 선택할 것이라는 먼 지난 날의 맹세.
이 선택이 결국 다시 깨어나게 된 나를 죽이는 것일지라도,
나를 대신해 희생한 과거의 이면을 배신하는 것일지라도, 상관없어.
현실이 결과만으로 판단한다면,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아.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면 그 희생마저도 헛된 것이 되어버릴테니까.
무가치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다시 피를 흘리더라도 나아가는 게 모두가 나에게 바라는 일이잖아.
다시 깨어난 그날 이후로, 그 누구도 내가 다시 깨어났음을 기뻐하지 않았던 것처럼.

차라리 넌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것이 죄인인 너의 죄.

살아있는 한, 살아있기 위해 날 죽여야만 하는 모순과
복수라는, 살인이라는 나를 숨쉬게 하는 이유.
그래.. 그것이 너와 나의 계약이자, 대가.

지금의 나는 복수라는 이름의 가면일 뿐이니까.
죄인이자, 복수자로서 타인의 도움 따위를 기대할 바에는 차라리 날 죽이겠어.


봐, 결국에는 다시 피를 갈구하게 될 거라고 했잖아?
절대로 넌 '계약' 이라는 굴레에서, '살인' 이라는 증오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넌 '살인' 이라는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병신이니까.
애초부터 그게 너를 살리게 하고 있는 힘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잖아?
사실은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으면서.
아니, 벗어날 수가 없겠지.
그것들이 없는 넌 결국 그 더러운 목숨을 추악하게 연명하고 있을 뿐일테니까.

그래, 언제나 넌 어긋날 뿐이었어.
누군가가 너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 수록 넌 더욱더 어긋났지.
웃기지 않아?
칼을 내려놓게 만들고자 했었던 사람들 덕분에 이제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내고 있다니.

당신들은 한 번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거야.
가면이라는 복수의 냉혹함을, 이면이라는 광기의 저주를.
아아.. 그래. 기괴하고, 추악하고, 역겨워.
억지로 들춰냈으면서, 결국 스스로 그 더러움에 고개를 돌리지.
그게.. 나와 당신들의 거리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다시, 눈을 뜨고 기억해 내.
'이면' 이라는 광기를, '죽음' 이라는 안식을.
두 번 다시 실수 같은 건 없어.
이번만큼은 정말로 죽여버릴테니까.

...지금 살아있는 걸, 그때 죽지 못할 걸 후회하게 해줄게.
곧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저주하게 될테니.

Posted by sey :
병원에 다시 입원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앞으로도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술.
...난 이 수술을 받을 자격이나 있을까.

수술은 내가 중환자실에 있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대학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보다 좋은 교수한테 수술을 받자는 제안이었지만,
내가 약물로 자살을 시도한 D.I 환자라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
호흡기 내과, 순환기 내과, 정신과.
나는 이 세 곳에서 모두 전신마취 승인이 받아야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라면 이런 복잡한 절차 따위 필요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결국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어차피 나 역시 귀찮은 건 질색이었으니.

2 차로 나뉘어진 수술은 1 차 수술에서 괴사된 피부 조직을 모두 제거하고
2 차 수술에서 피부 이식을 통해 제거한 부위를 봉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 차 수술은 일반적인 피부 이식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
피판술이라는, 피부 조직을 잘라내어 이식하는 것이 아닌 끌어와서 이식하는 방법.
나한테는 결과적으로 피판술이 적합하지만 조금 더 큰 수술이 될거라고 했다.

병실에서 맞이하는 수술 전 날의 밤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낯선 병실과 아직도 혼란스럽게 죄여오는 기억들.
수십 번씩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보이는 병실의 천장은 더욱더 현실과의 이질감을 가중시켰다.
의식을 되찾자 눈에 스며들었던 중환자실의 천장처럼.

1 차 수술은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로,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전혀 고통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익숙한 고통이 아니던가.
살 속을 파고드는 칼날의 차가움, 고통.
그래,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로도 수 없이 해왔던 반복이다.
하물며 마취가 되어있는 지금은 고통이라고 할 수 조차 없겠지.
그렇게 포르말린 냄새 가득한 수술실을 뒤로 하고 1 시간의 1 차 수술이 끝났다.

1 차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그때부터 난 항상 엎드려있어야 했다.
고정된 자세로부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지속됐다.
수술 부위를 짓누르고 있는 저 모래 주머니도 한 몫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참는 것 밖에는.

1 차 수술 다음 날, 아침부터 수술 부위에서 계속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4 시간 동안 지속되는 출혈. 지혈이 안되고 있었다.
간호사의 호출로 급히 레지던트가 상처 부위를 압박했지만 여전히 지혈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성인 남자의 몸무게가 실린 압박은 엎드려있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더욱더 가중시켰다.
하지만 지혈은 생명이 직결된 최우선 과제였고, 내 고통은 그 이후의 문제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 전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다시 참는 것 뿐이었다.

30 분씩 두 번으로 나뉘어진, 1 시간이라는 시간은 영원이라 느껴질만큼 길었다.
하지만 지혈을 위한 압박은 심장까지 압박했고 결국 심장 발작과 호흡 곤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시 산소 호흡기를 써야했고 급히 산소 포화도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압박을 지속할 수 없었다.
치솟은 맥박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잠시간의 휴식이 주어졌고
지혈은 임시적으로 압박 붕대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5 시간이 지나서야 피가 멎기 시작했다.

수간호사는 비정상적인 출혈 상태와 내 손목에 선명히 새겨진 흉터를 의심했고
결국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내가 처음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당시, 위세척으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남기없이 내 몸으로 모두 흡수된 62 일치의 약물.
수간호사는 그 약물의 이름을 물었고 과다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의심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간단한 소독마저도 수술실에 가서 받아야했고
기록을 감추기 위해 온 이 병원에서도 D.I 라는 병명이 내 차트에 기록되었다.

결국 지혈 때문에 2 차 수술은 조금 뒤로 미뤄져 4 일 뒤에 받게 되었다.
수술 하루 전부터 금식에 들어갔지만 겨우 하루의 금식으로는 나에게 평상시나 다름없었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또 한 번 지나갔고 2 차 수술 당일이 되었다.
수술실에서 마취사와 교수는 내 과거 기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약물에 의한 자살 기도.
하긴, 잘못 마취했다가 약물을 모두 흡수한 내 몸이 다시 깨어나지 않으면 곤란하겠지..
곧 링거 주사를 통해 마취액이 흘러들어왔고, 그 순간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4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떻게 다시 병실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의문보다 고통이 먼저였다.
곧 진통제가 주사되고 덕분에 한동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가기 시작했다.
진통제는 대단히 효과적이었고, 난 의도적으로 그것을 남용했다.
일시적일지라도 내가 소망했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니까.

중간 고지서를 통해 2 차 수술에서 내게 꽤나 많은 양의 수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사에서 내 지혈 상태는 정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1 차 수술에서도, 2 차 수술에서도 난 지혈이 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 걱정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작은 조소가 앞섰다.
만약 이게 과다복용의 부작용이라면, 살아남은 이 현실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테니까.
왼손목의 인대를 찢어놨을 때도, 오른손의 뼈를 상하게 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점점 죽어가는 내 몸은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걷지도, 앉지도 못하고 그저 엎드려만 있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식사조차 엎드려서 해결해야했고 그 때문에 더욱더 식욕은 떨어져만 갔다.
하루, 이틀, 1 주일, 2 주일, 3 주일 그리고 한 달.
그리고 어느새 내가 입원해있는 사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49 제 날이 되었다.
내가 약을 먹은지 50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50 일이 지난 그 시점에서도 난 병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까지도 난 퇴원을 할 수 없었고 걷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웠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할머니의 손자라는 나는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에도, 49 제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만약 나라면,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함께 살아왔던 그 시간 모두를 배신해버린 나였으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 이력을 알게 된 병원에서는 그날부터 나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진통제만큼이나 안정제도 효과적이었고, 난 굳이 그 효과를 거부하진 않았다.
어차피 매일매일 투여되는 안정제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테니까.
그렇게 안정제에 의지해 잠을 청할 수 있었고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병실에서 맞이하는 밤은 괴로웠다.
병실에 불이 꺼지면 어김없이 기억들이 뒤엉켜 무겁게 짓눌러왔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혹은 진지하게 내뱉던 그 말들로 복수를 위해 희생했던 많은 것들.
그것들에 대한 후회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복수의 끝에서 다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렇게나 잃어왔는데, 지키지 못했었는데.. 난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어.

이제는 이질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복수라는 광기에 휩싸여 괴로워했던 또 다른 나는 이미 죽어버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피 묻은 손으로 스스로를 죽여가던 너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누구보다도 희망을 바랬지만 복수와 계약에 사로잡혀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너는..
항상 심한 말들로, 행동으로 사람들을 튕겨냈었다.
언젠가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희망이 되어줄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도 내가 아니라 너였을거야.
언제나 피 묻은 칼과 혼자라는 괴로움 속에서 울부짖던 너였기에
사람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이라는 따뜻함에 위로 받고 싶었겠지. 희망이라는 미래 속에서 살아가고 싶었겠지.
피 묻은 손을, 두려움과 고통에 떨리는 그 손을 누군가 잡아주길 바랬을거야.
하지만 네가 그 무엇보다 바랬던 것은 거창한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그저 '같이 살아가자' 라는 말 한 마디였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너는, 결국 너만의 복수를 완성해버렸구나..
곁에 있던 사람들을 튕겨내고, 혼자서만 죽어갔어.
언제나 나 대신 버림 받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너는 언제나 혼자였다.
누구보다 살고 싶어했었으면서,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어했었으면서
그런 네가 끝끝내 선택한 미래는 죽음이라는 복수였다.
그런데도 너는 그 마지막 순간조차 자신의 복수를 밝히지 않았지.
그건 너의 행동에 대한 속죄였을까, 아니면 너를 이렇게 만든 현실에 대한 용서였을까.

살아남은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연장해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중압감을 짊어진 채로.
살아남은 나는 너라는 끝의 연장선을 그리며 관계의 거짓이라는 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만들어낸 미래. 그리고 나 혼자서 살아가야 할 미래.

병실에서 일어서던 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죄의 선고를 받은 날,
나에게 남겨진 건 새롭게 새겨진 흉터와 대상을 잃어버린 경멸에 가까운 분노였다.
약을 먹은 순간부터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던 상실감과 외로움.
네가 끝까지 믿고 기대해왔던 사람이라는, 빛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답이 겨우 이거였냐.
이렇게나 너를 등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혼자서만 괴로워해왔던거냐.
...'같이 살아가자'는 그 한 마디조차 듣지못했으면서.

복수를 완성시킬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지 않았었던 사람들.
언젠가는 스스로를 죽이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관했던 사람들.
몰랐다는 변명을 할 거라면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어.
몰랐다면 왜 그렇게나 날 걱정하는 척 지껄였어?
그래, 최소한이나마 내뱉었던 말의 일관성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겠지.

아무리 네가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등진 사람들과 현실을 용서하지 않아.
고통 속에서 혼자 남겨졌다는 것은 너와 나 둘 다 마찬가지지만, 난 결코 네가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했던 선택은 하지 않아.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장났던 건 사실 네가 아니라, 나였을테니.
일그러짐을 가면 뒤에 숨긴 채 숨죽이고 있었을 뿐,
'같이 살아가자' 라는 말 한 마디에 치유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너와는 달라.
난 모든 잘못을 혼자 떠안고 죽어갔던 너처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복수의 피는 이제 내가 흘리겠지만, 칼날은 날 향한 것이 아닐거야.

남겨진 나에게 언젠가 왜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고 그런 일을 시도했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 선택마저 복수의 연장선임을 깨닫는다.
그대로 죽어버린다면 난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될테고,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그건 복수의 끝이 아닐테지.
그리고 남겨진 나는 누가 너를 등졌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테니까.
복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
그래, 너의 복수는.. 내가 이어갈게. 나의 복수도 함께.

죄인으로서, 복수자로서 그리고 배신자로서.
그것이 살아남은 내 죄에 대한 속죄야.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