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31 기쁨
  2. 2009.10.04 후회
  3. 2009.09.06 자각고통


...다시 일 년, 만이지.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하는 건.

칼을 잡을 때마다 생각한다.
정말로 이제는 팔을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팔을 잠식하는 고통을.
...결국, 나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상처를 낸다면 한동안 왼팔을 쓰진 못하겠지.
아니, 어쩌면 인대를 건드려서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기억하고 있잖아? 투두둑- 하면서 무언가가 끊어져가는 느낌을.
이미 한 번은 근접했던 정도라면 이번이라고 해서 못할 건 없으니까.

...무섭냐? 그렇다면 이대로 칼을 내려놓아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
아니, 사람들은 네가 상처를 내려고 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걸.
하지만 잊은 건 아니겠지.
칼을 내려놓는다면, 넌 그저 쓰레기일 뿐이라는 걸.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신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살아갈 자신도 없는 주제에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렇다면 남아있는 건.. 자신을 죽이는 것 밖엔 없잖아..

칼을 다시 고쳐 잡고 앞으로 몸을 덮쳐올 끔찍한 고통을 기다린다.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는 없으니까.
그리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팔이 떨린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며
벌어진 상처 사이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시야에 붉게 스며온다.

그런데 왜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까.
한 번도 소리내서 웃어본 적이 없는데, 왜 숨죽여 웃고있는 걸까.
거울에 비친, 나는 고통스럽지만, 기쁘다.
괴로움에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지만, 그래도 기쁘다.
...나는 이걸로 조금이나마 더 내 죽음을 앞당길 수 있으니까.
살아갈 자신이 없는, 가치 없는 내 삶을 조금이나마 더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기뻐야만 해..
Posted by sey :

한 순간의 용기와,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용기.
나는 나약하니까-


-살아남은 걸 후회해.
이렇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후회해본 적이 있을까.
살아서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않았던 건데.
평생을 싸워나갈 용기가, 자신이 없다.

아아, 살아간다는 건 끝없는 투쟁이야.
매순간순간의 투쟁마다 고통을 참아내고 생을 지속해나가야만 해.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죽음은 무의미하다.
그래, 죽음 뒤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
그러니까 모두 살아서 자신의 궤적을 그리고 싶어해.
강하기에,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기에,
모두가 죽음이라는 허무보다 삶의 고통을 택한다.
...그렇지않으면 그저 텅, 비어있을 뿐이니까.

...자신이 없다.
...용기가 없다.
이런 내가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건..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 밖에 없어..
수 년을 함께한 칼과 피냄새 가득한 손..

잘못된 방법일지라도, 이게 내가 세상과 싸워나가는 방식이라면..
그건 비난받아 마땅한 걸까..
타인을 탓하지 않아. 그저 나약한 자신을 증오할 뿐.
왜, 나는 이렇게나 나약한 지..
왜- 이렇게나 빛날 수 없는 건지..

자살할 그 용기로 삶을 살아가라-, 고?
당신처럼 강하지 않기에, 나약하기에 택하는 도주가 자살인거야.
고통 뿐인 일생을 지속해나갈 자신이 없기에.
살아간다는 건, 한 순간의 고통보다 더한 괴로움일 뿐이니까.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 지는.. 너무 뻔하잖아.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런 현실을 지속해나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만.. 끝내고 싶어.

이미 한 번은 해봤으니까..
...그렇지?

Posted by sey :

I say, I say and I say..

- but no one hears me

#-

이미 한 번은 죽었었던 나는, 아직도 존재한다. 아직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도 받지 않고, 외부로 어떤 자극도 가하지 않은 채로.
그건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있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며, 고통이 있기에 살아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했고 그 답을 죽음에서 찾았다.
그리고 죽으려고 했었다.

며칠이나 지나 중환자실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고통으로 가득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울만큼.
그후, 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면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실감도 잃어버렸다.
살아있다는 실감이라던가 하는 그런 것들.
생의 실감을 얻기 위해 다시 한 번 피를 흘려도 보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았다.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타인을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가 괴로웠고 소중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괴로워했었던 타인과의 관계마저도 환멸이라는 이름의 가벼움으로 가득해.

아무리 상처내고 피를 흘려도, 이면과 대립하며 살아있음을 자각했던 나는
이면이 사라진 지금 더 이상 살아있음을 자각할 수 없다.
그렇게나 죽음을 원했었던 건,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살아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니까.
관계의 어긋남을 원했었던 건, 그만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으니까.

그래, 이제는- 모든 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나는- 이미 한 번은 나를, 당신을, 모두를 버렸는 걸.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를 죽여가며 살았던 가면과 이면도,
등지고 있는 그 빛을 모아주고 싶었던 소중했던 누군가도, 모두.

그러니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아.
너무나 괴로웠었지만, 그래서 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보답받고 싶었던 그날들로.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 라고 불렸던 그날들은 어쩌면 '삶과 행복의 줄다리기' 가 아니었을까.
이면이 있었기에 행복을 꿈꿀 수 있었고,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정말로 행복을, 구원을 꿈꾸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저 죽어가는 나날들이면, 충분해.

-#

cause I can't hear..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