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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8 증오 1
  2. 2008.07.20 환멸 4

어째서,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까,

...나는, 날 죽이고 싶어.

.

기대하지 않으려고 해.
기대하면 실망할 뿐이니까.

봐,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기대를 하잖아?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당연히 날 좋아하게 될거라는 기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너도 당연히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

하지만 그건 틀렸어.
누구도 당연히 좋아하게 될리 없고,
누구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건 없어.

그걸 깨닫는 순간은 괴롭다.
자신만의 꿈에서 깨어나는 환멸.
당연함이라는 껍질 속에서 보호받던 상식이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그러니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나를, 기대를 죽여왔어.
내 기대가 어린 아이처럼 무조건적이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실망으로부터, 그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아직 약했던 나는 힘이 없었으니까.
잘못된 힘을 빌려서라도 강해져야 했으니까.
피와 저주, 증오.
나는 그걸, 두 번째의 내게 건넸어.

방법이야 어찌됐든, 기대하지 않는 시간은 평온했다.
두 개의 내가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상처 받을 일도, 괴로울 일도 없었어.
거기엔 어떤 기쁨도, 슬픔도, 애정도 없이 그저 텅 비어있는거야.

기대하지 않는 한, 누구라도 타인이 되어버려.
기대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의미가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내 자신조차 무가치해졌어.

설령 그것이 내 감정마저 죽이는 것일지라도,
나를 외로움으로 고립시키는 것일지라도 괜찮아.
존재의 실감도 없겠지만,
그런게 내 행복의 의미라면.. 난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내게 다가온걸까.
벽 너머로 들린 그 상냥한 한 마디로 조금씩 기대가 되살아나,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서서히 날 잠식해 가.
그건 분명 나를 망가뜨릴거야.
이미 반복된 수 차례의 기억처럼
또 다시 실망하고, 괴로워할게 분명한데.

내가 무너져내린다.
지금까지의 내가 모두 부숴져버려.
자각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그 행동 하나 하나로, 그 말 한 마디로,
기대를 죽여온 날 비참하게 만들어.
그건 너무나 한심해서 날 경멸하고만 싶어져.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날 대신해서 스스로를 죽여온 나는..
이대로 존재조차 부정당한 채 죽어야만 하는걸까.
나 역시 원하지 않았음에도 참아가며 힘껏 노력해온 것 뿐인데.
왜 내가 그런 역할을 맡았어야 했을까.
누구도 자신의 소멸을 원할리, 없어.
아무리 망가졌어도, 아무리 잘못됐어도 남고 싶어.

구원 받고 싶은 나와 일그러져버린 나.
서로가 어긋나고, 서로를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해.
그건, 분명 그 누구의 탓이 아님에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나는, 그렇게 모순될 뿐이야.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뻤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뼛속까지 시린 미움이 퍼져간다.

.

미안해.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또 다른 나는.. 당신을 증오해.

Posted by s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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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라는건, 이렇게나 쉬운걸까..
피 냄새에 토할 것만 같은 환멸을 느낀다..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