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words'에 해당되는 글 271건

  1. 2010.11.28 자살론
  2. 2010.11.15 이상자
  3. 2010.10.10 가면극, 복수극
  4. 2010.08.16 불신
  5. 2010.07.28 생성
  6. 2010.07.13 의미 1
  7. 2010.05.19 empty
  8. 2010.05.02 이해
  9. 2010.01.28 고장
  10. 2010.01.07 죄인 5

만약 인간이 이중적이라면, 그것은 육체적인 인간에 사회적 인간이 중복되기 때문이라고,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말했었다.
지성이라는 이름을 빌린 사회적 인격과, 그것의 존재를 구성하는 육체의 인격.
그 상극하는 모순만이.. 나의 전부였다.


假.
사회적 인격을 부여받은, 가면이라 이름 붙여진 나는 지극히 이기주의였다.
자신만을 위해 살고, 오직 자신 안에서만 의미를 찾았기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가치를 찾을 수 없어 삶을 버렸던 것처럼.
그건.. 가면이라는 이름이 의미했던대로, 거짓이 아닌 진짜를 찾고 싶다는 행위였다고..
이제서야 어렴풋이 기억해낼 수 있게 됐다.

'그 어디에도 의미는 없었어..'
그래서 자신의 안에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
오직 자신만을 향한 사고의 종착역은 '지나친 개체화' 라는 곳 하나 뿐.
의식이 본성을 거역하고 개체로 절대화된 시점에서 이미 가면은..
더 이상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고 하는, 허무를 만들어버린 거다.

그렇게 외부에 허무를 만들어, 자신의 내부조차도 허무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허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허무 뿐이기에.
그런 식으로 밖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그렇게 남겨진 건 자신의 비참함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둘이라는 축복이 타인이라는 공포 밖에 없었으니까.

허무에 잠식되어간다.
내적 허무 속의 병적인 환희와 영원이라 이름 붙인 허무에 매료된 자각.
답은 하나였다. 생존을 완전히 중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 허무를 쫓기로.

사고한다는 것은, 행동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사고하는 만큼 삶을 포기한다.
환멸적인 무미건조함만이 남아있는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렇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삶의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니까.

그 허무라는 무한의 저주 속에서 그대로 죽어버릴 지라도 상관없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을 수 있다면, 그건 거짓이 아닌 진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결국 타인의 요구에 의해 생겨난 거짓이지만, 나는 진짜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 끝만큼은 진짜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거짓이 아닌, 진짜로서 죽고 싶다-, 고.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진짜였다고.. 기억해줄까..


異.
육체의 인격을 부여받은, 이면이라 이름 붙여진 나는 이타주의인 동시에 아노미였다.
달성될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은 영원한 불행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행위인데도,
이면은.. 그 달성될 수 없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를 쫓았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정말로, 행복해졌으면 했다.
도저히 이룰 수 없더라도 무한이라는 그 허무를, 행복을 쫓고 싶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건..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한,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고 의미도 없으니까.
언제나 실망할 뿐이었다. 언제나 좌절 뿐이었다.
언제나.. 내가 지켜낼 수 없는 행복이 눈 앞에서 무너져만 갔다.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의 한계를 초과하게 함으로써 환멸과 실망에의 길을 열어버린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그곳에 있던 건.. 오직 자신을 향한 광기에 찬 분노.
왜 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는지, 왜 나는 행복해질 수 없는지.
왜 나는 주위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지.
어째서.. 나는 모두를 불행하게만 만드는 걸까.

그건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었기에, 더욱더 화가 났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고 인정해버린다면,
자신이 추구했던 목표마저도 부정해버리잖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목표 자체는 틀리지 않아.
행복해지고 싶다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행복의 추구가 잘못될 리는 없으니까.
만약 틀린 게 있다면 그것을 이루고자 했던 수단으로써의 자신.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확실한 것을 줄 수 없는 만큼, 자신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가치했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을 가치있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물건'을 막 다룬다거나,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으니까.

이미 자신의 그릇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가져버렸다면, 없애버릴 수 밖에.
이건 서로의 가치를 저울질해가며 이루어지는 살인 행위가 아니다.
타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된 것은 오직 나 하나. 소멸하는 건 무가치한 자신 하나면 되니까.
나는, 무엇하나 이뤄낼 수 없었기에..
그래서 소멸하기로 했다.

영원한 꿈은.. 행복할까. 부디, 그랬으면.
내가 소멸한 세상에서, 남겨진 당신들은 행복해질 수 있기를..


가면은 자신의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자신만의 꿈 속에서 죽었다.
이면은 이룰 수 없는 꿈의 무한함 속에서 죽었다.
살아있다고 믿었던 건, 그저.. 내 착각이었던 거다.
그리고.. 허망한 흥분과 광기에서 깨어난 후, 분노에 찬 경멸만을 가진 나만이 남아있다.

허무를 향한 병적인 환희도 없다. 가면처럼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그저 내면의 허무는 여전히 존재해서 현실을 침식할 뿐.
더 이상 나은 것을 바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면처럼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단지 그릇에 넘쳐 흐르던 감정은 모두 소멸해서,
근원조차 잘려나간 것처럼 무미건조함만이 남아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 속에서, 허무의 나락으로 소멸해간 시간.
가면은 죽어서도 거짓된 채로 부정당하고, 이면은 죽어서도 행복에 다다를 수 없었다.
...그야말로, 허무한 몸부림이었다.
어디까지나 기억으로써, 그것도 오직 나만의 기억으로써 기억될 그들은..
존재했다는 의미조차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최소한 나만이라도, 끝까지 그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랬다.
하다못해 흔적으로나마 기억될 수 있기를.
이런 무의식적인 투영만이 그들이 살았던 현실과 나의 유일한 끈이니까.

그래서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환멸할 수 밖에 없다.


...그런 하찮은 이야기다.
그저 혐오만이 침전될 뿐인 시간.
나는 결국 가면도, 이면도 될 수 없는 그들이 남긴 껍질일 뿐..
그저 비정상의 범주에 속할 뿐인 이레귤러.

그래서 언제라도 의미가 없어진 생존을 끊어버릴 수 있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을 에피쿠로스적 자살이라 부르던가.
언젠가 소멸할 나 역시도, 그들을 따라 허무 속에서 죽겠지.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일테니까.

그렇기에 하찮은 날이다, 오늘은.
의미 없는 날을 의미 없게 하는 것만큼은.. 최소한의 의미가 있을테니.

Posted by sey :
...그래.

어차피 나는 이상자일 뿐이니까.
언제까지고 그 범주 안에서 머물러있으면 되는 거잖아.
Posted by sey :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병적인 욕망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무언가를 죽이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존재의의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 충동만이 남은 강박.
그걸.. 대체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끝날지라도, 그걸로 괜찮았던 거냐.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지만.. 너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이제는 행복해져도 된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죽지않고 살아남았으니까 그걸로 된거냐?

이면은 죽었다. 내가 아니라, 오직 이면만이.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그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왜냐면, 병적으로 죽음에 집착했던 건 이면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는 나를 죽이려는 충동만이 잔류해.
당신들이 그렇게 비난하고 죽여없애려고했던 이면이 죽었는데도, 왜 나는 그대로인 걸까.
나는.. 여전히 당신들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이상하잖아, 그건.
어쩌면 죽었어야 할 쪽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던 출발선으로 돌아왔을 뿐.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멈춰서서 죽어갈테니.
운 좋게 일시적으로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을지라도
결국은 또 같은 결말을 향해갈 뿐이야.
나를, 죽인다-는.

뻔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겠지.
아아, 고결하신 당신들께서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있는 모양이지?
이미 그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버린 죽음의 관념을, 이제와서 바꾸라고?
그거 알아?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아무런 합리적인 동기나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
틀렸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어.
왜냐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도, 최소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겠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까.
그저 나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 넣어두고 안식하며 부정해버리면서.
너희들은.. 알고있었으면서도 막지 않았던, 나와 같은 공범이야.

그렇게 또 다시 나는 가면과 이면으로 어긋나서
복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를 죽일 거다.
그 쌓여가는 증오로 또 언젠가는 이 충동에 저항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찾아오게 되는 그 불안의 소멸을,
내가 바라는 안식이라는 건.. 그것 뿐임을.

죽기 전까지 끊나지 않을 가면극이자, 복수극.
이번에도 내가 죽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언젠가 내가 죽을 수 있을 때까지 이 반복은 끝나지 않을테니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칼날을 밀어내고, 튀긴 피가 벽면에 새겨질 뿐.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칼날을 흐르는 피가 투두둑 떨어진다.
...다시 밀어낸다. 또 밀어낸다.
이제는 예전처럼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도 없다.
알고있으니까.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저 난, 침묵하며 방관할 뿐.

이제서야, 두 번째에서야 알 것 같다.
이런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그런 길을.. 같이 걸어가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실망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누구라도 그럴테니까.
한 가지.. 조금 슬픈 게 있다면,
오직 사람만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겠지..

하하, 타인에게서 의미를 찾는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Posted by sey :
...왜, 내가 불쌍했냐?
그래서 말을 걸어주고, 마치 아는 사람인 것 처럼 지내줬던 거냐.
속으로는 그렇게 이질감을 느꼈던 주제에,
겉으로는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줬던 거냐.

...괜찮다고 했었지. 하하,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그런데도 그렇게 선을 그으며 당신들과 나를 구분했던 거냐.
정상과 상식이라는, 너희들의 범주와
비정상과 비상식이라는, 나의 범주로.

그동안 그 역겨운 이질감을 참으며 잘도 연기해왔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
그러니 내가 말을 걸었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 선을 넘으려고 하는 내가, 얼마나 역겨웠을까.

당신들이 느꼈을 그 혐오감이 나한테도 전해져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
그걸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나 구역질이 나오는 병신 같은 기분이었을까.

자기 주제를 모르고 미쳐 날뛰는 것만큼 역겨운 것도 없겠지..
봐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그래서 당신들을 끝까지 믿지 않은 게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걸 끝까지 잡아준 이 어긋남과 상처들이 너무나 고마워.

당신들의 말, 당신들의 마음을 믿지 않을 수 있어서,
믿지 않게 되서.. 정말 다행이야.
Posted by sey :
이면이 죽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언제나 스스로를 상처내며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했던, 또 다른 나.
자해의 주체이기도 했고, 그 절실함의 근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나는 그 이면 뒤에 숨어있었을 뿐.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절실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난.. 내 나약함을 그 절실함에 기댈 수 있었기에.

내가 얼마나 이면에 의지하고 있었는지, 이면이 죽어버린 후에야 알게됐다.
피를 흘릴 수 없는, 자신을 죽일 수 없는 나는 얼마나 한심한지도.

상처를 내지 않고는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모른다.
그게 우리들이 서로에게 관계하는 방법이었으니까.
피를 흘리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모른다.
그것만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피를 흘리며 흉내내도, 지금은 그 절실함이 없다.
그저 더 상처를 내라는, 피를 흘리라는 강박과 현실과의 타협만이 있을 뿐.
그렇게 어디까지나 죽어버린 이면의 발자취를 쫓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희석되어버린 증오와 목표를 상실해버린 복수.
그리고 그렇게나 증오했던, 약해빠진 자신으로의 회귀.
그 절실함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거냐.
무언가를 죽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으면서.
점점 더 어긋나며 강도를 더해갔던 절규들이 이렇게나 남아있는데
이제와서, 모든 걸 없었던 걸로 하고싶은 거냐.

...증오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그러니 겨우 이 정도 상처 가지고 아프다고 난리지.
웃기지않냐? 봉합술을 받지 않고서는 아물지 않을 정도까지의 상처도 냈던 주제에
겨우 조금 벌어진 자상 가지고 아프다니.
하하.. 정말 어디까지 타락해버린 거냐, 너.

이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무리 네가 꾸며낸 거짓으로 환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거야.
봐, 이게 현실이야.
넌 또 다시 이렇게 피가 흘러내리는 칼을 잡고 있다는 걸.

정말 오랜 시간과 수많은 상처.. 그리고 피를 흘리며 만들어냈던, 이면.
다시 한 번 더, 그 광기어린 절실함이 필요해.
이면이 죽어버렸다면, 새로 만들면 돼.
그 대가로 또 다시 끔찍한 고통 속에 혼자서 죽어갈 뿐일지라도.
잊지마, 심장을 죄여오는 그 고통을.

다시 한 번, 나와 함께 걸어가자. 복수, 나의 끝을 향해.
이미 그 대가의 지불은 시작됐으니까.
Posted by sey :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다, 는 건.. 기억조차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난, 살아있었던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난 이렇게나 버려져있는 걸까.

기억들이 이질적이라고 해도, 단 하나 유일하게 실감을 느끼는 게 있었다.
단 한 번 뿐일지라도, 내가 살아있었다고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순간.

그건, 나의 끝이라고 믿었던 시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행동했던 그 시간은
아직도 뇌리 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삼켜낸 한 알, 한 알에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으니까.
오직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을 것이라는 안도감만이 있었을 뿐.
어차피 처음부터 나에겐 누구도,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잖아.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죽음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결국 실천해버리겠지.
또 다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련도 없이.. 한 순간에.
이미 한 번은 버린 자신이기에, 두 번도 버릴 수 있으니까.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원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보답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함께' 라는 기적과 그 소중함만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포기했는데, 애써 외면했는데..
그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도 바랬던 소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고통을.. 이어가라고, 말한다.

꿈을 꿨다.
꿈이라는 건.. 희망이라는 건,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이었니까.
내가 바랬던 그 순간까지만은 살아갈 수 있도록.
비록 나는 빛날 수 없을지라도.

꿈을, 잃어버렸다.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마저 잃어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거니까.
죽기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잃어버렸으니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는 의미조차도.

이제서야 알 것 같아.
그 죽음의 의미를, 그리고 그 복수의 의미를..
난 언제까지고..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이게.. 네가 진정으로 원한 거였지?
끝나지 않아.. 꿈을 꿀 수 없어..
살아갈 수가 없어..
Posted by sey :


텅 비었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로.
그건..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던 죄의 대가일까..
행복을 바랬던 간절함도,
복수를 원했던 절실함도, 모두.

나를 죽이려는 타인을 증오함으로써 가면으로부터 도망치고,
나를 좋아하는 타인을 경멸함으로써 이면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순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은.. 모순일까.
가면도, 이면도 아닌 나는 어디에도 없는데도..

알아. 자신을, 서로를 죽여감으로써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을.
그렇기에 그것 말고는 남아있는 게 없어..
쓰라린 고통을 참고 견뎌내면 그 끝에는 기쁨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라고-,
지독한 외로움과 환멸만이 날 맞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아무리 괴로워도, 그걸로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상처 내도, 피를 흘려도 괜찮으니까 스스로를 겨누는 경멸과 마주한다.
죄인임에도 속죄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배신자 주제에 이제와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으니까..
타인에게 위로 받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위로도.. 버려지는 거짓이 될테니.
그걸,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결국에는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Posted by sey :



그건, '거짓' 이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끊임없이 나를 죽여가며 얻어낸.. 공허한 가면극.
어차피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처음부터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처럼 착각하고 공감하는 연극처럼
가면이라는 연출로도 당신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어차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당신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러니까.

내가 같이 죽어달라고 했냐?
같이 피를 흘리고, 상처를 내자고 했냐?
아니잖아. 그런데 왜 당신들은 내게 자꾸만 강요를 해?
왜 자꾸 날 없애려고 해?

내가 어떤 기분으로 나를 그어내는 지,
그럴 때마다 잔류하는 죽음이라는 강박과 고통이라는 공포를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
언제나 형식적인 질문과 답이 오갈 뿐, 결국은 무엇 하나 직시하지 않아.
일방적인 걱정이라는 보살핌 속에서 나는, 이렇게나 망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 누구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어.
지식으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한다는 그 상냥한 거짓말을 경험한 이제는 알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속일 수 밖에 없는 거야.
그걸로나마 당신들 혼자서만은 타협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상처내도 상대가 인식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내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그렇게 당신들은 내 가면만이 '나' 라고 착각하고 그거에 만족하면 돼.
아무리 상처내고 피를 흘려도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만족해온 것처럼, 그렇게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다시 한 번 죽어줘야 만족할 당신들이니까.

언젠가 당신들은 내가 변하길 원한다고 했었지.
좀 더 밝은 방향으로, 과거에서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기를.
하지만 그게 당신들과는 무슨 상관인데.
내가 변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기뻐할 거라는 헛소리라면 집어치워.
그래서 뭐가 기쁜 건데? 기쁜 게 있기는 하냐?
아니면 자기만족인가? 죽어 마땅한 쓰레기 한 명의 인생을 구제해주었다는.

이해할 수가 없어.
웃으면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당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
당신들이 원하는 건 나와의 공존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가면 뿐이니까.

그런 가면 뒤에서 내 연극에 함께해준 당신들을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 모를테지.
내가 얼마나 당신들을 증오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끝날 거라고 생각해.
그 타인이라는 존재에 수 없이 절망하고 환멸했던 나 또한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사라져갈 거라는 걸..

그래, 당신들과 나, 우리들이 키워 낸 증오가 결국 날 잠식해가는 거야.
'가면' 과 '이면' 이라는 모순으로.. 또 저주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엾고 역겨워서
하루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Posted by sey :
...그저, 조금 화가 났을 뿐이야.
이런 상처들이 너무나 익숙해져 이제는 아무런 실감조차 없는 나에게
'오늘은 할 일이 있으니까,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되겠지..' 라던가,
이제는 상처를 낸다는 것이 그저 매일 양치질을 하는 것과 같은 부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그저 나를 죽이기 위해, 자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를 죽여온 게 10 년이 되었다.
9 년이 되기 전에 죽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지금까지.
어쩌면 일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고통.
거기엔 어떤 감정도, 의미도 없으니까.
그렇기에 화가 났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칼을 잡는다.

내 곁에서, 수 없이 나를 죽여오고 지켜줬던 칼.
모두가 떠나도 언제나 내 옆에 있어줬던 유일한 존재.
그 칼을 고쳐잡고 상처를 내기 직전, 아무리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두려운 건 변함이 없다.
이대로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그저 익숙해졌을 뿐.. 고통이 두려운 건 너무나 당연하기에.

'앞으로도 살아갈 자신이 있어?'
두려움에 칼을 놓으려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살아간다는 의미, 앞에 놓여진 수 많은 고통과 싸워나갈 수 있겠냐-고.
...자신이 없다. 분명, 자신이 없어.
앞으로를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 나를 그어내는 고통보다 훨씬 더 두렵다.
그렇기에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나를 죽이는 것을 택할 것이다.

칼날이 지나가고 벌어진 상처 사이가 충혈된 안구에 붉게 스며든다.
손목을 관통하는 하나의 선과 그 선이 새하얗게 사라져가는 느낌.
그 느낌을, 잊을 리가 없다.
그 상처 때문에 응급실로 끌려가 한동안 왼손을 쓰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상처는 그때보다 더 심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아아, 이 정도로 상처를 내는 건, 얼마만일까.


고통으로 울부짖는 왼팔을 억누르고 처음으로 확인한 것은 '손가락이 움직이는가' 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힘겹게나마 움직여지는 모습에 안도감과 한심함이 뒤섞인다.
이번에도 결국.. 이 정도 밖에 상처내질 못하는 나약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기에.

만약 상처를 내지 않고 칼을 내려놓았다면,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내일을 살아갈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자신을 죽이는 것조차 하지 않는 나약함을,
계약을, 복수를 포기한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앞으로를 살아갈 자신이 없으면서 오늘을 살고 싶다는 건.. 죄야.

살아있으면 안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추악한 자신을 죽이는 것 뿐.
나를 죽여가기에 아직은 살아있어도 괜찮을테니까.
그걸로 의미를 부여받고, 그 존재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나를 죽여가며 조금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나를 죽여가며 조금씩 희미해지는 내 내일에 안도해왔으니까.
오늘을 살아있기 위해서는 날 죽여야만하는 모순이 나를 죽이고 나를 살아있게 해.


그렇기에.. 익숙함이라는 변명으로 날 죽이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을 뿐이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저주하게 만들어줄거란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기도 하니까.

차갑게, 그리고 서서히 뻣뻣하게 굳어가는 왼손.
손가락에 힘을 주는 일이나 단순히 타자를 치는 것조차
벌어진 손목의 상처 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왼손을 무리하게 사용할 때마다 지혈이 되지 않아
거즈조차 감당할 수 없을만큼 피가 흘러내렸다.
피가 소매에까지 스며들어 붉게 얼룩진 옷과 멈추지 않는 피.
그럼에도.. 나는 다시 상처를 벌리고 칼날을 쑤셔넣는다.
이걸로, 화는 조금 누그러진걸까.

언젠가 의사가 나에게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곧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단순히 주먹을 쥔다거나 펜을 잡는 것조차 힘든 지금 내 왼손을 보면,
그 언젠가가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최소한 지금은.. 평소처럼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동안은 왼손을 자유롭게 쓰지는 못할테니..

손에 배긴 피 냄새에 구토가 나올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역겨운 건 피 냄새가 아니라 내 자신일거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내가.

그렇게 언젠가는 이 정도의 상처에 익숙해지고,
그때는 또 다시 그 이상의 상처를 내야겠지..
상처를 내는 그 순간에.. 언제나처럼 망설이겠지만,
또 언제나처럼 결국에는 칼을 쥔 손을 움직일 거라는 걸 안다.

'앞으로도 살아갈 자신이 있어?'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기에,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간다는 것이 훨씬 더 두렵기에.


그렇게 난.. 역시나 복수를 선택할거라고, 말했었다.
복수라는 그 말의 의미를, 결과를 알면서도 선택한 길이기에.
그 말을 듣고, 화를 냈었던 것 같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말들 중에서 가장 진심이 담긴 말 같다, 면서..

무언가를 죽이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든 죽여왔다.
소멸이라는 이름 그대로..
그것이 칼로는 죽일 수 없는 나의, 그리고 타인의 마음이나 감정, 기대라고 할지라도.

그렇기에 나를 죽여가는 것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질 않아.
조금의 미안함도, 안쓰러움도 없다.
만약 고통이라는 것이 내 몸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절규라면,
언제나처럼 그 고통도 힘으로 억눌러 죽일 뿐이다.

그건.. 타인의 걱정이나 진심 따위도 마찬가지.
그런 것들, 한 번도 느껴본 적도 없다.
그저 내뱉는 단어 그대로의 자각 뿐.
만약 거기에 진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미 죽였을테니까.
그리고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죽여왔기에 더이상 내겐 어떤 것도 들리지가 않아..

걱정한다, 라..
그래, 그래서 그 걱정이라는 보살핌 속에서 10 년 동안이나 날 죽여왔다.
최소한 나에게 '걱정한다'와 '걱정하지 않는다'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으니까.

그만하라, 고?
나를 죽이는 걸 그만두면, 나를 대신해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
앞으로를 살아간다는 그 공포를 대신 짊어져줄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인인 이상 그 무엇도 나를 대신해줄 수는 없어.
슬픔을, 고통을 나눈다던가 하는 말들은 겉치레일 뿐..
처음부터 그런 건.. 나눌 수 있는게 아닌거야..
결국은 타인이기에, 언제나처럼 허울 좋은 말만 내뱉어버리고
자신의 인생이 아니니 나중에 쉽게 발만 빼버리면 되니까.

그래, 어쩌면 한 번에 죽는 건 두려워서 이렇게 발악하고 있는 게 짜증나는 건지도 모르지.
죽어버릴 거면 한 번에 죽어버리던가, 하고.
그렇다면 미안해. 그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원하는만큼 비난하면 돼.
결국에는.. 언젠가 나를 증오하게 될테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타인을 마음 깊이 불신하고 증오하고 있음을 안다.
그 불신을, 증오를 가면이라는 무기로 죽여가고 있을 뿐..
그러니 이기적이라던가..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어떤 비난이라고 할지라도.. 분명, 잘못되어있는 건 나일테니.
그래, 나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를, 그리고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진 않아.
또 다시 그것들을 죽여가는 것을 계속하리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만약 인간이 고장날 수 있다면, 난 이미 손을 쓸 수도 없을만큼 고장나버린 게 아닐까..
자신의 어디가 고장나있는지 알면서도 이미 고칠 수조차 없는.

그렇다면.. 남은 건 폐기 뿐이라는 걸, 고장난 나도 알고 있는 것 뿐..
Posted by sey :

대상을 잃어버린 속죄는 의미가 있는 걸까-
죄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마치 그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심장을 죄여온다.
용서해줄 대상이 없는데도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런 나를, 용서해줄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수평선만을 그릴 뿐..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아, 그래, 달라진 것은 없으니까..

왜, 여기까지인 건지..
...추해.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