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병적인 욕망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무언가를 죽이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존재의의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 충동만이 남은 강박.
그걸.. 대체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끝날지라도, 그걸로 괜찮았던 거냐.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지만.. 너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이제는 행복해져도 된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죽지않고 살아남았으니까 그걸로 된거냐?

이면은 죽었다. 내가 아니라, 오직 이면만이.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그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왜냐면, 병적으로 죽음에 집착했던 건 이면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는 나를 죽이려는 충동만이 잔류해.
당신들이 그렇게 비난하고 죽여없애려고했던 이면이 죽었는데도, 왜 나는 그대로인 걸까.
나는.. 여전히 당신들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이상하잖아, 그건.
어쩌면 죽었어야 할 쪽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던 출발선으로 돌아왔을 뿐.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멈춰서서 죽어갈테니.
운 좋게 일시적으로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을지라도
결국은 또 같은 결말을 향해갈 뿐이야.
나를, 죽인다-는.

뻔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겠지.
아아, 고결하신 당신들께서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있는 모양이지?
이미 그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버린 죽음의 관념을, 이제와서 바꾸라고?
그거 알아?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아무런 합리적인 동기나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
틀렸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어.
왜냐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도, 최소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겠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까.
그저 나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 넣어두고 안식하며 부정해버리면서.
너희들은.. 알고있었으면서도 막지 않았던, 나와 같은 공범이야.

그렇게 또 다시 나는 가면과 이면으로 어긋나서
복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를 죽일 거다.
그 쌓여가는 증오로 또 언젠가는 이 충동에 저항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찾아오게 되는 그 불안의 소멸을,
내가 바라는 안식이라는 건.. 그것 뿐임을.

죽기 전까지 끊나지 않을 가면극이자, 복수극.
이번에도 내가 죽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언젠가 내가 죽을 수 있을 때까지 이 반복은 끝나지 않을테니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칼날을 밀어내고, 튀긴 피가 벽면에 새겨질 뿐.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칼날을 흐르는 피가 투두둑 떨어진다.
...다시 밀어낸다. 또 밀어낸다.
이제는 예전처럼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도 없다.
알고있으니까.
인간은 한 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걸 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저 난, 침묵하며 방관할 뿐.

이제서야, 두 번째에서야 알 것 같다.
이런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그런 길을.. 같이 걸어가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걸.
실망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누구라도 그럴테니까.
한 가지.. 조금 슬픈 게 있다면,
오직 사람만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겠지..

하하, 타인에게서 의미를 찾는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Posted by sey :
...왜, 내가 불쌍했냐?
그래서 말을 걸어주고, 마치 아는 사람인 것 처럼 지내줬던 거냐.
속으로는 그렇게 이질감을 느꼈던 주제에,
겉으로는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줬던 거냐.

...괜찮다고 했었지. 하하,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그런데도 그렇게 선을 그으며 당신들과 나를 구분했던 거냐.
정상과 상식이라는, 너희들의 범주와
비정상과 비상식이라는, 나의 범주로.

그동안 그 역겨운 이질감을 참으며 잘도 연기해왔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
그러니 내가 말을 걸었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 선을 넘으려고 하는 내가, 얼마나 역겨웠을까.

당신들이 느꼈을 그 혐오감이 나한테도 전해져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
그걸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나 구역질이 나오는 병신 같은 기분이었을까.

자기 주제를 모르고 미쳐 날뛰는 것만큼 역겨운 것도 없겠지..
봐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그래서 당신들을 끝까지 믿지 않은 게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걸 끝까지 잡아준 이 어긋남과 상처들이 너무나 고마워.

당신들의 말, 당신들의 마음을 믿지 않을 수 있어서,
믿지 않게 되서.. 정말 다행이야.
Posted by sey :
이면이 죽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언제나 스스로를 상처내며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했던, 또 다른 나.
자해의 주체이기도 했고, 그 절실함의 근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나는 그 이면 뒤에 숨어있었을 뿐.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절실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난.. 내 나약함을 그 절실함에 기댈 수 있었기에.

내가 얼마나 이면에 의지하고 있었는지, 이면이 죽어버린 후에야 알게됐다.
피를 흘릴 수 없는, 자신을 죽일 수 없는 나는 얼마나 한심한지도.

상처를 내지 않고는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모른다.
그게 우리들이 서로에게 관계하는 방법이었으니까.
피를 흘리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모른다.
그것만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피를 흘리며 흉내내도, 지금은 그 절실함이 없다.
그저 더 상처를 내라는, 피를 흘리라는 강박과 현실과의 타협만이 있을 뿐.
그렇게 어디까지나 죽어버린 이면의 발자취를 쫓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희석되어버린 증오와 목표를 상실해버린 복수.
그리고 그렇게나 증오했던, 약해빠진 자신으로의 회귀.
그 절실함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거냐.
무언가를 죽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으면서.
점점 더 어긋나며 강도를 더해갔던 절규들이 이렇게나 남아있는데
이제와서, 모든 걸 없었던 걸로 하고싶은 거냐.

...증오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그러니 겨우 이 정도 상처 가지고 아프다고 난리지.
웃기지않냐? 봉합술을 받지 않고서는 아물지 않을 정도까지의 상처도 냈던 주제에
겨우 조금 벌어진 자상 가지고 아프다니.
하하.. 정말 어디까지 타락해버린 거냐, 너.

이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무리 네가 꾸며낸 거짓으로 환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거야.
봐, 이게 현실이야.
넌 또 다시 이렇게 피가 흘러내리는 칼을 잡고 있다는 걸.

정말 오랜 시간과 수많은 상처.. 그리고 피를 흘리며 만들어냈던, 이면.
다시 한 번 더, 그 광기어린 절실함이 필요해.
이면이 죽어버렸다면, 새로 만들면 돼.
그 대가로 또 다시 끔찍한 고통 속에 혼자서 죽어갈 뿐일지라도.
잊지마, 심장을 죄여오는 그 고통을.

다시 한 번, 나와 함께 걸어가자. 복수, 나의 끝을 향해.
이미 그 대가의 지불은 시작됐으니까.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