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그런 허황된 행복을 바란 것도 아닌데..
눈에 비치는 지독한 절망만을 감싸안는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그것이 얼마나 부숴지기 쉬운 것인지,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했었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기적 같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아무리 알고있어도, 아무리 소중히해도 지킬 수가 없었으니까.

어째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 때문에 포기해야만 하는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타인에게 자신의 책임지지도 못할 현실을 강요하는 사람들.
...그 무책임함이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더욱더 증오만이 커진다.

'나'는 상관없었다.
나는.. 내 이익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적으로 간주하고 죽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희생해야 할 것이 없었다. 슬퍼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허무함으로 괴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이기에 가능한 사고방식.

그러다가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당신들이 나를 그토록 경멸했던 것인지.
하하..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이제껏 그 사고방식의 차이를 알지 못했던 것 뿐이다.

나는.. 상대가 누구라도, 그 관계를 죽여버릴 인간이니까.
자신을 위해 이제껏 희생해준 사람에게조차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평생도 나를 위해 희생하다가 죽을 때마저도 나를 위해 죽어달라고 말할 거다.
그런 후에도 아무런 미안함도, 고마움도 느끼지 못할테지.
그러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어떤 자발적인 행동도, 희생도, 감정 소비도 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 뿐인, 사물이니까.
그래, 나는.. 결국 사람을 사물로 보고 있는 거다.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와 관계하는 방법은 관계를 죽인다, 는 행위.
나에게있어, 상대방은 점점 소모되어가는 소모품일 테니까.

나는 정말, 무언가를 죽이는 것 밖에는 못하는구나..
이제야 다시 마주하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다..

Posted by sey :

만약 인간이 이중적이라면, 그것은 육체적인 인간에 사회적 인간이 중복되기 때문이라고,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말했었다.
지성이라는 이름을 빌린 사회적 인격과, 그것의 존재를 구성하는 육체의 인격.
그 상극하는 모순만이.. 나의 전부였다.


假.
사회적 인격을 부여받은, 가면이라 이름 붙여진 나는 지극히 이기주의였다.
자신만을 위해 살고, 오직 자신 안에서만 의미를 찾았기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가치를 찾을 수 없어 삶을 버렸던 것처럼.
그건.. 가면이라는 이름이 의미했던대로, 거짓이 아닌 진짜를 찾고 싶다는 행위였다고..
이제서야 어렴풋이 기억해낼 수 있게 됐다.

'그 어디에도 의미는 없었어..'
그래서 자신의 안에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
오직 자신만을 향한 사고의 종착역은 '지나친 개체화' 라는 곳 하나 뿐.
의식이 본성을 거역하고 개체로 절대화된 시점에서 이미 가면은..
더 이상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고 하는, 허무를 만들어버린 거다.

그렇게 외부에 허무를 만들어, 자신의 내부조차도 허무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허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허무 뿐이기에.
그런 식으로 밖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그렇게 남겨진 건 자신의 비참함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둘이라는 축복이 타인이라는 공포 밖에 없었으니까.

허무에 잠식되어간다.
내적 허무 속의 병적인 환희와 영원이라 이름 붙인 허무에 매료된 자각.
답은 하나였다. 생존을 완전히 중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 허무를 쫓기로.

사고한다는 것은, 행동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사고하는 만큼 삶을 포기한다.
환멸적인 무미건조함만이 남아있는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렇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삶의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니까.

그 허무라는 무한의 저주 속에서 그대로 죽어버릴 지라도 상관없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을 수 있다면, 그건 거짓이 아닌 진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결국 타인의 요구에 의해 생겨난 거짓이지만, 나는 진짜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 끝만큼은 진짜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거짓이 아닌, 진짜로서 죽고 싶다-, 고.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진짜였다고.. 기억해줄까..


異.
육체의 인격을 부여받은, 이면이라 이름 붙여진 나는 이타주의인 동시에 아노미였다.
달성될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은 영원한 불행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행위인데도,
이면은.. 그 달성될 수 없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를 쫓았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정말로, 행복해졌으면 했다.
도저히 이룰 수 없더라도 무한이라는 그 허무를, 행복을 쫓고 싶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건..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한,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고 의미도 없으니까.
언제나 실망할 뿐이었다. 언제나 좌절 뿐이었다.
언제나.. 내가 지켜낼 수 없는 행복이 눈 앞에서 무너져만 갔다.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의 한계를 초과하게 함으로써 환멸과 실망에의 길을 열어버린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그곳에 있던 건.. 오직 자신을 향한 광기에 찬 분노.
왜 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는지, 왜 나는 행복해질 수 없는지.
왜 나는 주위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지.
어째서.. 나는 모두를 불행하게만 만드는 걸까.

그건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었기에, 더욱더 화가 났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고 인정해버린다면,
자신이 추구했던 목표마저도 부정해버리잖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목표 자체는 틀리지 않아.
행복해지고 싶다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행복의 추구가 잘못될 리는 없으니까.
만약 틀린 게 있다면 그것을 이루고자 했던 수단으로써의 자신.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확실한 것을 줄 수 없는 만큼, 자신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가치했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을 가치있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물건'을 막 다룬다거나,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으니까.

이미 자신의 그릇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가져버렸다면, 없애버릴 수 밖에.
이건 서로의 가치를 저울질해가며 이루어지는 살인 행위가 아니다.
타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된 것은 오직 나 하나. 소멸하는 건 무가치한 자신 하나면 되니까.
나는, 무엇하나 이뤄낼 수 없었기에..
그래서 소멸하기로 했다.

영원한 꿈은.. 행복할까. 부디, 그랬으면.
내가 소멸한 세상에서, 남겨진 당신들은 행복해질 수 있기를..


가면은 자신의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자신만의 꿈 속에서 죽었다.
이면은 이룰 수 없는 꿈의 무한함 속에서 죽었다.
살아있다고 믿었던 건, 그저.. 내 착각이었던 거다.
그리고.. 허망한 흥분과 광기에서 깨어난 후, 분노에 찬 경멸만을 가진 나만이 남아있다.

허무를 향한 병적인 환희도 없다. 가면처럼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그저 내면의 허무는 여전히 존재해서 현실을 침식할 뿐.
더 이상 나은 것을 바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면처럼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단지 그릇에 넘쳐 흐르던 감정은 모두 소멸해서,
근원조차 잘려나간 것처럼 무미건조함만이 남아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 속에서, 허무의 나락으로 소멸해간 시간.
가면은 죽어서도 거짓된 채로 부정당하고, 이면은 죽어서도 행복에 다다를 수 없었다.
...그야말로, 허무한 몸부림이었다.
어디까지나 기억으로써, 그것도 오직 나만의 기억으로써 기억될 그들은..
존재했다는 의미조차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최소한 나만이라도, 끝까지 그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랬다.
하다못해 흔적으로나마 기억될 수 있기를.
이런 무의식적인 투영만이 그들이 살았던 현실과 나의 유일한 끈이니까.

그래서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환멸할 수 밖에 없다.


...그런 하찮은 이야기다.
그저 혐오만이 침전될 뿐인 시간.
나는 결국 가면도, 이면도 될 수 없는 그들이 남긴 껍질일 뿐..
그저 비정상의 범주에 속할 뿐인 이레귤러.

그래서 언제라도 의미가 없어진 생존을 끊어버릴 수 있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을 에피쿠로스적 자살이라 부르던가.
언젠가 소멸할 나 역시도, 그들을 따라 허무 속에서 죽겠지.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일테니까.

그렇기에 하찮은 날이다, 오늘은.
의미 없는 날을 의미 없게 하는 것만큼은.. 최소한의 의미가 있을테니.

Posted by sey :
...그래.

어차피 나는 이상자일 뿐이니까.
언제까지고 그 범주 안에서 머물러있으면 되는 거잖아.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