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실감이 없다, 는 건.. 기억조차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난, 살아있었던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난 이렇게나 버려져있는 걸까.

기억들이 이질적이라고 해도, 단 하나 유일하게 실감을 느끼는 게 있었다.
단 한 번 뿐일지라도, 내가 살아있었다고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순간.

그건, 나의 끝이라고 믿었던 시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행동했던 그 시간은
아직도 뇌리 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삼켜낸 한 알, 한 알에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으니까.
오직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을 것이라는 안도감만이 있었을 뿐.
어차피 처음부터 나에겐 누구도,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잖아.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죽음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결국 실천해버리겠지.
또 다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련도 없이.. 한 순간에.
이미 한 번은 버린 자신이기에, 두 번도 버릴 수 있으니까.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원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보답받지 못한 삶일지라도,
'함께' 라는 기적과 그 소중함만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포기했는데, 애써 외면했는데..
그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도 바랬던 소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고통을.. 이어가라고, 말한다.

꿈을 꿨다.
꿈이라는 건.. 희망이라는 건,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이었니까.
내가 바랬던 그 순간까지만은 살아갈 수 있도록.
비록 나는 빛날 수 없을지라도.

꿈을, 잃어버렸다.
살아가기 위한 절실함마저 잃어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거니까.
죽기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잃어버렸으니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는 의미조차도.

이제서야 알 것 같아.
그 죽음의 의미를, 그리고 그 복수의 의미를..
난 언제까지고..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이게.. 네가 진정으로 원한 거였지?
끝나지 않아.. 꿈을 꿀 수 없어..
살아갈 수가 없어..
Posted by sey :


텅 비었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로.
그건..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던 죄의 대가일까..
행복을 바랬던 간절함도,
복수를 원했던 절실함도, 모두.

나를 죽이려는 타인을 증오함으로써 가면으로부터 도망치고,
나를 좋아하는 타인을 경멸함으로써 이면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순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은.. 모순일까.
가면도, 이면도 아닌 나는 어디에도 없는데도..

알아. 자신을, 서로를 죽여감으로써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을.
그렇기에 그것 말고는 남아있는 게 없어..
쓰라린 고통을 참고 견뎌내면 그 끝에는 기쁨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라고-,
지독한 외로움과 환멸만이 날 맞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아무리 괴로워도, 그걸로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상처 내도, 피를 흘려도 괜찮으니까 스스로를 겨누는 경멸과 마주한다.
죄인임에도 속죄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배신자 주제에 이제와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으니까..
타인에게 위로 받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위로도.. 버려지는 거짓이 될테니.
그걸,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결국에는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Posted by sey :



그건, '거짓' 이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끊임없이 나를 죽여가며 얻어낸.. 공허한 가면극.
어차피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처음부터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처럼 착각하고 공감하는 연극처럼
가면이라는 연출로도 당신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어차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당신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러니까.

내가 같이 죽어달라고 했냐?
같이 피를 흘리고, 상처를 내자고 했냐?
아니잖아. 그런데 왜 당신들은 내게 자꾸만 강요를 해?
왜 자꾸 날 없애려고 해?

내가 어떤 기분으로 나를 그어내는 지,
그럴 때마다 잔류하는 죽음이라는 강박과 고통이라는 공포를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
언제나 형식적인 질문과 답이 오갈 뿐, 결국은 무엇 하나 직시하지 않아.
일방적인 걱정이라는 보살핌 속에서 나는, 이렇게나 망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 누구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어.
지식으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한다는 그 상냥한 거짓말을 경험한 이제는 알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속일 수 밖에 없는 거야.
그걸로나마 당신들 혼자서만은 타협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상처내도 상대가 인식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내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그렇게 당신들은 내 가면만이 '나' 라고 착각하고 그거에 만족하면 돼.
아무리 상처내고 피를 흘려도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만족해온 것처럼, 그렇게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다시 한 번 죽어줘야 만족할 당신들이니까.

언젠가 당신들은 내가 변하길 원한다고 했었지.
좀 더 밝은 방향으로, 과거에서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기를.
하지만 그게 당신들과는 무슨 상관인데.
내가 변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기뻐할 거라는 헛소리라면 집어치워.
그래서 뭐가 기쁜 건데? 기쁜 게 있기는 하냐?
아니면 자기만족인가? 죽어 마땅한 쓰레기 한 명의 인생을 구제해주었다는.

이해할 수가 없어.
웃으면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당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
당신들이 원하는 건 나와의 공존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가면 뿐이니까.

그런 가면 뒤에서 내 연극에 함께해준 당신들을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 모를테지.
내가 얼마나 당신들을 증오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끝날 거라고 생각해.
그 타인이라는 존재에 수 없이 절망하고 환멸했던 나 또한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사라져갈 거라는 걸..

그래, 당신들과 나, 우리들이 키워 낸 증오가 결국 날 잠식해가는 거야.
'가면' 과 '이면' 이라는 모순으로.. 또 저주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엾고 역겨워서
하루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