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라는건, 이렇게나 쉬운걸까..
피 냄새에 토할 것만 같은 환멸을 느낀다..
처음으로 피가 따뜻하다는걸 알았어..
아, 내 손에 흘러내리는 피는.. 처음부터 차가웠던게 아니었구나-..
순간이지만, 떨리는 손끝에 전해져왔던 따뜻한 온기와..
차갑게 굳어가던 마지막..
기억하고 있어,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미워하냐는 말..
그럼 그때마다 난, 왜 내 자신을 좋아해야하냐고 대답했었지..
언젠가, 상처가 너무 벌어져서 소독약조차 바르지 못하고 날 바라보던 그 사람은..
피가 스며드는 거즈를 감아주는 동안 나에게 따뜻한 말들을 많이 해줬었는데..
어째서 난 그 말을 듣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었던걸까..
분명 듣고 싶었던 따뜻한 말이었는데도,
상처를 치료해줘서 고마웠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어..
응, 분명.. 이제는 아닌걸거야..
더 이상 내 상처를 바라봐주길 바라고 위로를 듣고 싶은게 아닌거야..
날 치유해줄, 그리고 내 피 묻은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곧 식어버릴지라도, 내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따뜻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로를 받았는걸..
그거면.. 충분해..
이제 스스로를 상처내는 것에 의미는 없어..
애써 변명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니까..
피는 따뜻하고..
난.. 그저 죽고 싶은거야..
내가 가장 자신있는 방법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러니까 그 긴 시간 속에서 마음을 잃었어도 괜찮아.
모든걸 체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걸.
홀로 남겨진 시간 속에서 홀로 걸어온 시간.
이젠, 괜찮아. 더이상 다른 누군가의 삶에 개입되고 싶지 않아.
먼저 다가서는 것도, 먼저 내밀어 준 손을 잡는 것도 모두.
알고 있어, 단지 혼자 내버려둘 수가 없었을 뿐이라는걸.
그리고 그것 뿐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그런거라면 난 괜찮아.
자신을 상처내는게 뭐가 어때서. 별로 상관없잖아.
아무리 자신을 증오하고 상처내도 난 이렇게 살아있어.
시간이 멈춰버린 채, 마음이 죽어버렸을지라도.
그러니까 살아있는 한 괜찮아.
자신을 상처내도 마음이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는걸.
내가 얼마나 바래왔던 모습인데. 되돌리고 싶지 않아.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 피를 흘리면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
더이상 날 바라봐주길 바라지 않아.
많이 아프다고, 그렇게 말하며 동정을 바라지도 않아.
피를 흘리며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주길 바랬던,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알아주길 바랬던 어린 날의 꼬마가 아니니까.
그만큼.. 커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