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나도, 그리고 당신들도 믿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로는 죽을 수 없을거라고..
겨우 내가 상처내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을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언제나 그렇게 한 마디 말 뿐이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알고 있었을까, 나 역시 숨기고 있었다는걸..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눈치채지도 못하면서..
내가 알려줄 수 밖에 없었던 몇 가지 작은 상처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뿐..
그것만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와서 결국엔 떠나가는 결과의 반복..
그게.. 타인의 한계야..




'출혈이 반복되면 만성 빈혈로 심장이 비대해지고, 판막에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있으며
지속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몇 주 전 쯤에,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
정확히는 손목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낸 결과의 끝에 관한 말..
...어쩌면 난 저 과정의 중반을 넘어선걸까.
자해를 시작할 무렵부터 가지고 있었던 만성적인 빈혈과..
외관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혈압..
그리고 이따금씩 느껴지는 심장의 고통..

솔직히 기뻤어..
이제까지는..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 자신의 생명까지 단축시키고 있음을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단지.. 어렴풋이 느끼기만 할 뿐인, 서서히 죽어가는 몸..
그래, 이걸로는 부족하다는걸 알고 있었어..
그렇기에 이유를 가질 수가 없었던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도 스스로를 짓밟지 못한다면..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까..
가끔씩 이런 고민을 하면서.. 아직도 죽지 못하는 자신이,
겨우 이 정도의 상처 밖에 내지 못하는 겁쟁이인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나약했어..

혹시나.. 내 자신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멈춰진 채 죽어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기 위해서 상처를 내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랬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어쩌면 이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만약, 이렇게나 상처를 냈는데도 자신의 생명을 줄일 수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내 행동들이 너무나 무의미해지는 것이니까..
죽음을 바라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떳떳할 수 있는 상처를 낼 수 있기를 바래왔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말, 정말로 슬펐을거야..
억지로 억눌러가며 버텨온 고통들과 흘려온 핏방울..
이것들이 모두.. 그저 철 없는 장난에 불과했을테니까..
그래서, 다행이야.. 그게 아니었음을 이렇게 알게 되었잖아..

누구나 조금씩 자신의 끝을 향해 걸어가지만..
난 내 의지로 그걸 조금씩 앞당기고 있는 것일 뿐..
느리지만, 조금씩 자신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걸까..
3 년..? 2 년..?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와서 그만둔다고 해도..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멈춰진 시간, 이미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앞으로도 잃어갈 시간..
흉터가 되어버린 상처들과 지금까지 상처 입혀온 자신의 생명에게..
이제는.. 멈춰서서 바라볼 수만은 없는거야..

이상하지..
항상 궁금했었어, 만약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웃어줄까.. 아니면.. 기뻐해줄까..
아직은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은 먼 미래에는 알 수 있기를 바래..

이유도 잊어버린 채 자신을 향한 복수심과 증오만 남아서..
왜 스스로를 이렇게 상처입혀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결국 마지막에는 나 역시도.. 후회하게 될까..
하하.. 왠지 정말 죽지 않으면 지금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 될 것 같아..
자신이 한 말은, 약속은.. 지키고 싶으니까..
더 이상 혼자서 남겨지는 지키지 못할 말은,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난 죽어야 하는걸..

낫지 않는 상처.. 절대로 낫도록 놔두지 않을 상처..
그리고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손목의 상처..
거즈와 밴드로 상처를 감싸고 피를 닦아내는 하루하루..
툭-.. 툭-..
어느새 익숙해진, 쉼 없이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와..
그걸 무의미한 눈동자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버린 나..
그래, 또 다시 찾아오는.. 7 번째의 겨울이야..

정말이지,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밤새 흘러나온 피를 닦아내고.. 다시 흘리고.. 또 다시 닦아내..
매일매일 고통에 신음하고.. 이미 메말라 버린 눈물은 더이상 나오지 않아..
살아갈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 채..
스스로만을 증오하고 상처내며 살아온 하루하루들..
그 시간들만큼 잃어온 자신의 생명과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으로..
이제는 아주 조금이나마.. 용서받을 수 있는걸까..

어쩌면.. 당신의 말대로 난 정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아직도 살아있어서 미안해..

...생일, 축하해..
이건 내가 태어난 저주 받은 날에, 내가 주는 선물..
단 한 번도.. 축복받지 못한 날에..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