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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20 부탁.
  2. 2006.04.25 너와 나의 계약.. 2
해가 저문다.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혼자임을 자각할 수 없다.
아니, 자각할 필요조차 없다.
튕겨져 나오는걸 알면서도 의미없이 지껄이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돼.
쓰레기를 바라볼 사람은 없으니까, 이질적인 익숙함 속에서 본래의 모습을 억누를 필요도 없어.

아아, 그랬었지-.
살아갈 자격도, 가치도 없는 인간에게 상처주는 일은 즐겁다.
그건 너무나 즐거워서 언젠가는 내가 살아서 고통받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했어.
일상은 습관이 되고, 습관엔 이유가 필요없다. 그냥 습관이니까.

칼날이 무뎌져서 쉽게 상처는 생기지 않는다. 힘을 더 줘서, 이대로 피부를 찢어낼까.
...이대로 그저 칼날만 피부를 스친 채 끝낸다.
한심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하는 병신이 되어버린거냐.
칼날을 쥔다. 손에 밀려오는 힘을 버티질 못하고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데도 손엔 아무런 상처도 없다. 칼등에 눌린 자국만이 선명히 남아있다.

어째서일까. 왜 칼날만 바라보고 그만둔걸까.
이제껏 내가 바라본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중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것이 뺨에 길게 상처가 있는 얼굴이었는데.
다른 모습은 역겹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처 없는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바라봐줄 정도로 난 비위가 강하진 않은데,
그 모습이 벌써 3 년 전 이야기라니.
만약 스스로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역겨워서 구토가 나올지도 몰라.
인간이 저렇게 역겨울 수도 있구나, 하는 비웃음과 함께.

문득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저주하고 싶어진다.
그 시간들처럼, 손에 가득 피를 머금고 자신을 저주할 수 있다면 즐거울거야.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인정했던 이유.
그것조차 유지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너에겐,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어.
그것이 없는 너는, 누구도 바라봐주지 않아.

아무 목적도 없이 그렇게 네게 주어진 시간을 흘러보내면서 서서히 죽어갈거냐고-
그렇게 혼자서 영혼을 죽이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짓밟으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인거냐고-
넌 죽기 위해 태어냔 거냐고- 언젠가의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난 죽기 위해 태어났고, 언젠가 죽기 위해 오늘을 살아갈 뿐이야.
만약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내가 널 죽을 때까지 짓밟을거라고-.
그게 6 년 전-, 피로 맹세한 너와 나와의 계약이었어.

저기,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곳에 서 있는거야?
언제쯤 죽어줄 생각이야? 여기 있어도 괜찮아?
어서 꺼져주는 편이 여러 사람을 위하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쓰레기라면, 예전처럼 입 닥치고 있어줘.


아아, 미안. 그런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쓰레기였지, 나.
Posted by sey :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이 길을..
아직도 버텨나가고 있는건,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하지 않기 때문일 뿐..

지난 시간들처럼 나 자신을 위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으니까..
이곳에서 자신의 무능력함에 절망하고, 스스로의 천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추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가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고통일 것이다..

혼자이기에 느낄 수 없었던 '혼자라는 고독'..
이것이 나에게 하나의 안식이었다면, 지금의 내가 택한 길은.. '여럿 속의 혼자' 니까..

.

이것은 너와 나의 계약,
채 치유되지 않은 상처, 그 계약의 증표에 다시 피를 머금으며..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자신을 짓밟고,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가 파괴해..
지워지지 않는 계약의 증표와 함께,
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스스로를 짓밟겠다던 너와 나 그 피의 계약을,
그날의 녹이 슬어버린 칼날과 함께 지켜나갈 것이다..

.

실패만이 나에게 내려진 축복이며, 고통의 순간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기쁨..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내 자신에게, 앞으로 남겨진 시간은 그것 뿐이니까..
그런 미래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현실을 저주할 필요는 없어..
저주할 대상은 그 현실이 아니라, 너 자신이니까..

아무도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나' 이기에 잡아주지 않은 것..
'나' 이기에 쉽게 잊혀지는 존재이며, '나' 이기에 버람받는 존재,
아무리 몸부림쳐도 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 이기에.. 이제는 이것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니까..

.

내가 살아있는건, 남은 내 미래를 없애기 위해..
나의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추하게 살아남아.. 그 축복의 끝을 맞이할 테니까..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