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걸 되찾고 싶다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 했어..
다시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는데,
왜 이제와서 후회 같은 걸 하고 있는걸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던 빛,
아무리 바래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실..
또 다시 그걸 바라게 될 스스로를 바라볼 자신이 없다..
그게 너무나 한심해서, 또 너무나도 추해서.

.

처음 얼굴에 상처를 냈을 때, 난 울지 않았다.
파고드는 쓰라림이 아팠지만 그 정도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떨어지는 핏방울을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
아무런 죄책감도, 슬픔도, 후회도 없었어..

하지만 언젠가 한 번 운 적이 있었다.
힘껏 참고 참았는데.. 왜 언제나 내겐 아무 것도 없는지..
아무런 선택의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는 현실이 미웠어..

모두 다 그만두고 싶었다..
모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다 무너져내리고 다 부서져서 고장나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날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어..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쳐도 결국은 어제와 같은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 뿐..

그렇다면.. 그래, 나부터 고장나면 되는구나..
내가 고장나버리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무너질테니까..
그래서 망가뜨렸어..
그리고 처음으로 울었다.

.

그날 이후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생겼다.
웅크려 울고 있을 때, 유일하게 내 곁에 있었고..
내 손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던 피 묻은 칼..

내게는 사람의 온기라고 부르는 것들보다 피가 더욱 따뜻했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순수하게 날 위로해주었어..

또 다시 현실에 주저앉을 때에도,
괴로움에 지쳐 도망쳤을 때에도..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칼은 언제나 있어주었다.

그래서 칼을 내려 놓을 수가 없어.
그게 아무리 날 서서히 죽여가는 것일지라도, 괜찮아.
어차피 내게는.. 아무도 없는걸.
처음부터 그것 밖에는 없었으니까..
참을 수 없을만큼 아프더라도, 점점 죽음을 향해 걸어가더라도..
이렇게나마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변하지 않은 채 지금껏 함께한 칼과
내 바램대로 나를 망가뜨려 준 내 이면..
그렇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았어..
죽을 만큼 불행하지는 않았어..

.

소중하기에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
그래서 난, 당신들을 잃어버린 거겠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과..
당신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대체 어떤 차이였던걸까..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