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와야할 장소를 잘못 온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잇는 자격이라도 있었다면..
온 몸을 죄어오는 이 고통을.. 난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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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약속.. 하지만 그때는, 당신이나.. 매일매일 도착하는 당신의 편지..
그리고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상처만이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겨우 당신을 잃고나서야.. 깨어날 수 있었던 꿈..
결국 난,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

2 년 전, 그때와 같은 고통을 다시 겪으면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적막감 속에서 울려퍼지는 빗소리라던가.. 눈부신 녹빛의 공허함..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한 당신과의 기억..
벌써 고통의 현실로 깨어나 맞는 3 번째의 여름이다..
그때처럼 난.. 여전히 손에 피를 묻히고.. 혼자 있을 때도, 수백의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 있을 때도..
혼자임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치 무언가를 잊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유를 알게된 지금에서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 시간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그렇게 착각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 허상의 미래에 기대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일시적으로나마 그 공백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일에 전념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끝났을 때 밀려오는 고통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피로서 새겨진 고통으로 고통을 잊어보려 했다..

마치 과거인 듯한 현실.. 기억하고 있음에도, 어느새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오직 나만이.. 과거만을 바라보며,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는, 마치 죽어있는 듯한 시간들이..
점점 하루를 잠식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망칠 곳을 찾았던, 그날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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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모든게 변해버린 현실.. 그런데도, 왜.. 기억 속 그 장소는 아직도 그대로인걸까..
잿빛 구름도.. 쓸쓸하게 비치던 노을도 다 그대로인데..
지금도 당신과 걸었었던 그 길엔.. 그때처럼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고, 하루가 흘러가고..
그렇게 1 년이, 3 년이 흘러가버렸다..
당신과, 당신 뒤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노을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까..
더이상 현실의 기억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추억들..
한 순간의 꿈,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서, 더이상 현실이 될 수는 없었다..

언제나 고통을 느낀다.. 비 오는 거리를 걸을 때도.. 책을 덮을 때도.. 창문 밖을 바라볼 때에도..
어째서.. 내가 이런 고통을 떠맡게 된걸까..
아무리 자신을 깎아내려도.. 아무리 쓰레기 취급을 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느낌만 받았다..
그 시간들의 의미는, 고통으로 고통을 잊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대답은.. 한 번도 듣질 못했다.. 자신으로부터도, 세상으로부터도..
나에겐 마치.. 그 대답을 알 가치조차 없다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이어져 있는 기억, 아득한 시간 속.. 난, 약속을 했다..


2006. 7. 23.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