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는 것조차 구역질이 날 만큼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
친한 척 먼저 말을 건네고, 걱정하는 척 배려하며,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환멸의 말들을 몇 번이고 삼켜낸다..

나는.. 언젠가 가면을 벗을 날만을 기다렸어..
좀 더 비참하게, 좀 더 잔인하게 복수하고 싶었으니까..
너무나 싫어서, 너무나 미워해서..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역겨웠다..

왜? 라는 말은 이미 무의미해..
이유는 필요 없어, 만약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 존재 자체였으니까..

나는.. 결국 복수를 하지 못할거라고 했다..
자신을 어디까지고 복수로 몰고가도
결국 복수의 순간에 무너져내릴지도 모를 자신이 한심해..

얼마나 무의미할지, 또 얼마나 허무할지..
그런 각오조차 없이 선택하진 않았을텐데..

점점 타인이 되어간다..
화를 낼 이유조차도, 복수할 의미조차도 없는, 타인..
점점 희미해져가는 방향 속에서, 남아있는 대상은 나 자신 뿐..

그렇지만,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자신을 저주하던 날들도,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선택하던 날들도..
좀 더.. 망가뜨릴 수 있어, 좀 더 부숴질 수 있어..

이젠 가면을 벗지 않아..
그 시간 동안 내가 가면 뒤에서 얼마나 경멸하고
또 얼마나 증오했는지.. 알 수도 없을테지..

비록 복수가 아닐지라도-
그래, 그만큼 비참한 것도 없을테니까..

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