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었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로.
그건..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던 죄의 대가일까..
행복을 바랬던 간절함도,
복수를 원했던 절실함도, 모두.
나를 죽이려는 타인을 증오함으로써 가면으로부터 도망치고,
나를 좋아하는 타인을 경멸함으로써 이면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순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은.. 모순일까.
가면도, 이면도 아닌 나는 어디에도 없는데도..
알아. 자신을, 서로를 죽여감으로써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을.
그렇기에 그것 말고는 남아있는 게 없어..
쓰라린 고통을 참고 견뎌내면 그 끝에는 기쁨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라고-,
지독한 외로움과 환멸만이 날 맞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아무리 괴로워도, 그걸로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상처 내도, 피를 흘려도 괜찮으니까 스스로를 겨누는 경멸과 마주한다.
죄인임에도 속죄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배신자 주제에 이제와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으니까..
타인에게 위로 받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위로도.. 버려지는 거짓이 될테니.
그걸,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결국에는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