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버텨왔어야 했는지.. 너는, 그 피와 함께 기억해줄까..
내가 그려오던 미래를 위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나오고자 몸부림쳤던 그 세상으로부터..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음을.. 지금에서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를 찾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도.. 현실에서도 살아갈 수 없었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제는 의미를 찾는, 그런 무의미한 짓은 하지 않아..
그저 살아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라질 수 있길 바랄 뿐..
그것을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더 피를 흘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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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자각하게 하는 푸른빛 하늘과.. 노을.. 이제는 흉터가 되어버린 상처들..
지금 그 하늘 아래 서 있는건.. 나 혼자 뿐..
이제서야.. 꿈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거짓된 과거들을 바라보고 있어..
그때도, 가을이었으니까..

언젠가 보았었던, 함께 걸어가던 낙엽길과 기억들..
그 길 위에서 가끔가다 올려다 볼 수 있었던 시리도록 눈부신 하늘..
어째서 다시 기억나버린걸까..
당신과 함께, 시간의 모래 속 깊숙히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괴로워하고, 기대하며..
처음으로 타인이 내 존재를 기억해주길.. 착각했어..
지킬 필요가 없어진 약속 앞에서.. 피의 고통으로 고통을 억제하고..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상처에 실망하며 바라보았던 하늘..
피로 얼룩진 붉은 손 위에 보이는 푸른 하늘은..
언젠가 당신이 말했던, 그 하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쉽게 체념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대할 정도로 어리지는 않아..
기대하더라도 억제할 수 있어.. 피와, 그 기억들만 있다면..


피로 물든 가을 속에서 언제나 걸어갔었던 그 계단..
난.. 또 다시 그 길을, 그 계단을 걸어가고 있어..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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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