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그래- 다들 그렇게 말했다.
가면과 이면이라는 이름의, 서로 대립하는 양가감정과
서로를 겨누는 살인 충동을.
가면 속에서 타인과 관계하며 타인을 튕겨내고
이면 속에서 타인과 어긋나며 상처를 알아봐주길 원한다.
가면 밖에서 지독한 괴리감을 느끼고
이면 밖에서 살아있다는 후회를 느낀다.
언제나 가식 속에서 타인을 마주한다.
상대방이 가식을 깨닫고 결국 배신감에 내가 미움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나는, 분명 부숴질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날 보려하지 않을테니까.
타인과 마주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눈에 비치는 풍경에 녹아있는 애정도, 증오도 없는 대상.
그건-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타인이 되어버리기에.
...나에게 타인이란, 그런 의미일 뿐이잖아.
이제와서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거냐.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 받고 싶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할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 죄값을 짊어지고 있다고 합리화하고 싶었다.
이제와서 대상을 잃어버린 속죄에 무슨 의미가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마주하지 않았기에,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타인이었을텐데.
어째서.. 나는 아직도 그 빛을 그리고 있는 걸까.
평생동안 날 용서하지 않을 수 있도록,
┌
...그러니까 언제라도 내게 죽어줬으면 해.
┘
-
손에 쥐어진, 피가 흘러내리는 칼날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한다.
복수자로서, 계약자로서 그리고 죄인으로서
난 결국 살인이라는 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무엇 하나 이뤄낼 수 없다.
살인이라는 힘에 기대지 않는다면 난 너무나 나약하기에, 너무나 하찮기에.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난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상실해버리니까.
인정 받아야만 한다. 언제나 남들보다 우월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죄가 되어버리는 나이기에
살아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또 내뱉을 자신이 없다.
살아있을 가치가 존재하기에 살아있고, 내 존재 자체가 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결국 날 죽이는 것일지라도 상관없어.
얼마든지 그어줄테니까.
얼마든지 망가뜨려줄테니까.
인정받을 수 없다면, 남들보다 우월할 수 없다면 너 같은 쓰레기는 죽어버려.
차라리 그편이 덜 비참할테니.
나약하기에, 살아있기 위해서 살인에 의지하고 살인에 의지하기에 스스로를 죽여야만 한다.
죽여야만,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을 죽여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자신을 증오할 수 밖에 없다.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한심하고 짜증이 나기에.
그런 자신이기에 증오하고 증오할 수록 죽이고 싶다.
증오하는 상대를 죽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뒈지고 싶냐?
왜, 살인이라는 힘에 기대지 않아도 네 같잖은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냐?
착각하지 마. 피에 의지해도 고작 이 따위인 병신 주제에.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넌 널 죽여가면서까지 억지로 해내야하지.
얼마나 병신 같으면 그 따위냐?
아아.. 벌써 다 잊은 모양이네. 너 같은 머저리들은 머리가 나빠서 좋겠어.
하긴, 그러니까 지금도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건가?
...죽여버릴테니까.
타인보다 우월할 수 없다면 내가 죽여버릴테니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때마다 죽여버리겠어.
그 죄값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도록
상처를 벌리고 또 벌려서 피가 멎는 날이 없게 해줄테니까.
상처를 낼 곳이 없다면 상처를 짓이겨서라도 다시 그어줄테니.
너만, 너만 죽일 수 있다면 돼.
어디, 그렇게라도 살고 싶다면 발버둥쳐봐.
그렇게 구차하게라도 살아가고 싶으면, 살아있어도 괜찮아.
난 그저 네가 살아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너를 죽일 뿐이니까.
아마 그럴 자신이 없다면, 죽는 편이 덜 고통스러울테지.
이미 한 번은 네가 그랬던 것처럼.
...웃기지?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만 한다는 게.
모순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대로.
┌
난 그저, 네가 살아있다는 걸 참을 수 없을 뿐이야.
┘
2009. 10. 23. 00:00 : from Cursed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