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페르소나이기에, 나는.. 없다는 걸.
주제넘게 잊고있었던 걸까.
그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을 어떻게든 존재시키게 한 결과일 뿐임을..
과거를 마주할 때마다, 부정하려는 나를 죽여간다.
나는 어차피 이해받지 못하니까,
나는 어차피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몇 번이고 죽여도.. 괜찮을테니.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그런 무의미함의 반복일지라도,
어차피 거짓으로 부정될 가면일 뿐인데..
부정하려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강제하지 못한다면,
허상으로조차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분명, 욕심이 났던 거다.
내가 진짜이고 싶은,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싶은.. 욕심.
사실은 그런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행복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정하고 또 부정해서 믿고싶지 않았다.
나야말로,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나도 받아들여지고 싶었으니까.
...한심했다.
행복을 추구했던 그 마음만큼은 절대로 부정하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내 욕심을 위해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거니까.
그렇기에 환멸하는 건, 소멸해야 하는 건.. 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빛나는 것이라면..
존재하지 않는 내가, 빛날 수 없는 내가 소멸하는 것이 옳으니.
가면의 페르소나이기에,
또 이면의 페르소나이기에.
소멸시킬 수 있고 또 그것을 강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잘못된 것은 나 하나라서.
소멸하는 것은 의미없는 자신 하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