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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2 복수, 속죄 1
병원에 다시 입원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앞으로도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술.
...난 이 수술을 받을 자격이나 있을까.

수술은 내가 중환자실에 있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대학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보다 좋은 교수한테 수술을 받자는 제안이었지만,
내가 약물로 자살을 시도한 D.I 환자라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
호흡기 내과, 순환기 내과, 정신과.
나는 이 세 곳에서 모두 전신마취 승인이 받아야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라면 이런 복잡한 절차 따위 필요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결국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어차피 나 역시 귀찮은 건 질색이었으니.

2 차로 나뉘어진 수술은 1 차 수술에서 괴사된 피부 조직을 모두 제거하고
2 차 수술에서 피부 이식을 통해 제거한 부위를 봉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 차 수술은 일반적인 피부 이식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
피판술이라는, 피부 조직을 잘라내어 이식하는 것이 아닌 끌어와서 이식하는 방법.
나한테는 결과적으로 피판술이 적합하지만 조금 더 큰 수술이 될거라고 했다.

병실에서 맞이하는 수술 전 날의 밤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낯선 병실과 아직도 혼란스럽게 죄여오는 기억들.
수십 번씩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보이는 병실의 천장은 더욱더 현실과의 이질감을 가중시켰다.
의식을 되찾자 눈에 스며들었던 중환자실의 천장처럼.

1 차 수술은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로,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전혀 고통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익숙한 고통이 아니던가.
살 속을 파고드는 칼날의 차가움, 고통.
그래,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로도 수 없이 해왔던 반복이다.
하물며 마취가 되어있는 지금은 고통이라고 할 수 조차 없겠지.
그렇게 포르말린 냄새 가득한 수술실을 뒤로 하고 1 시간의 1 차 수술이 끝났다.

1 차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그때부터 난 항상 엎드려있어야 했다.
고정된 자세로부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지속됐다.
수술 부위를 짓누르고 있는 저 모래 주머니도 한 몫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참는 것 밖에는.

1 차 수술 다음 날, 아침부터 수술 부위에서 계속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4 시간 동안 지속되는 출혈. 지혈이 안되고 있었다.
간호사의 호출로 급히 레지던트가 상처 부위를 압박했지만 여전히 지혈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성인 남자의 몸무게가 실린 압박은 엎드려있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더욱더 가중시켰다.
하지만 지혈은 생명이 직결된 최우선 과제였고, 내 고통은 그 이후의 문제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 전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다시 참는 것 뿐이었다.

30 분씩 두 번으로 나뉘어진, 1 시간이라는 시간은 영원이라 느껴질만큼 길었다.
하지만 지혈을 위한 압박은 심장까지 압박했고 결국 심장 발작과 호흡 곤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시 산소 호흡기를 써야했고 급히 산소 포화도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압박을 지속할 수 없었다.
치솟은 맥박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잠시간의 휴식이 주어졌고
지혈은 임시적으로 압박 붕대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5 시간이 지나서야 피가 멎기 시작했다.

수간호사는 비정상적인 출혈 상태와 내 손목에 선명히 새겨진 흉터를 의심했고
결국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내가 처음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당시, 위세척으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남기없이 내 몸으로 모두 흡수된 62 일치의 약물.
수간호사는 그 약물의 이름을 물었고 과다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의심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간단한 소독마저도 수술실에 가서 받아야했고
기록을 감추기 위해 온 이 병원에서도 D.I 라는 병명이 내 차트에 기록되었다.

결국 지혈 때문에 2 차 수술은 조금 뒤로 미뤄져 4 일 뒤에 받게 되었다.
수술 하루 전부터 금식에 들어갔지만 겨우 하루의 금식으로는 나에게 평상시나 다름없었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또 한 번 지나갔고 2 차 수술 당일이 되었다.
수술실에서 마취사와 교수는 내 과거 기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약물에 의한 자살 기도.
하긴, 잘못 마취했다가 약물을 모두 흡수한 내 몸이 다시 깨어나지 않으면 곤란하겠지..
곧 링거 주사를 통해 마취액이 흘러들어왔고, 그 순간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4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떻게 다시 병실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의문보다 고통이 먼저였다.
곧 진통제가 주사되고 덕분에 한동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가기 시작했다.
진통제는 대단히 효과적이었고, 난 의도적으로 그것을 남용했다.
일시적일지라도 내가 소망했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니까.

중간 고지서를 통해 2 차 수술에서 내게 꽤나 많은 양의 수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사에서 내 지혈 상태는 정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1 차 수술에서도, 2 차 수술에서도 난 지혈이 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 걱정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작은 조소가 앞섰다.
만약 이게 과다복용의 부작용이라면, 살아남은 이 현실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테니까.
왼손목의 인대를 찢어놨을 때도, 오른손의 뼈를 상하게 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점점 죽어가는 내 몸은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걷지도, 앉지도 못하고 그저 엎드려만 있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식사조차 엎드려서 해결해야했고 그 때문에 더욱더 식욕은 떨어져만 갔다.
하루, 이틀, 1 주일, 2 주일, 3 주일 그리고 한 달.
그리고 어느새 내가 입원해있는 사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49 제 날이 되었다.
내가 약을 먹은지 50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50 일이 지난 그 시점에서도 난 병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까지도 난 퇴원을 할 수 없었고 걷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웠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할머니의 손자라는 나는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에도, 49 제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만약 나라면,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함께 살아왔던 그 시간 모두를 배신해버린 나였으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 이력을 알게 된 병원에서는 그날부터 나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진통제만큼이나 안정제도 효과적이었고, 난 굳이 그 효과를 거부하진 않았다.
어차피 매일매일 투여되는 안정제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테니까.
그렇게 안정제에 의지해 잠을 청할 수 있었고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병실에서 맞이하는 밤은 괴로웠다.
병실에 불이 꺼지면 어김없이 기억들이 뒤엉켜 무겁게 짓눌러왔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혹은 진지하게 내뱉던 그 말들로 복수를 위해 희생했던 많은 것들.
그것들에 대한 후회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복수의 끝에서 다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렇게나 잃어왔는데, 지키지 못했었는데.. 난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어.

이제는 이질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복수라는 광기에 휩싸여 괴로워했던 또 다른 나는 이미 죽어버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피 묻은 손으로 스스로를 죽여가던 너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누구보다도 희망을 바랬지만 복수와 계약에 사로잡혀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너는..
항상 심한 말들로, 행동으로 사람들을 튕겨냈었다.
언젠가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희망이 되어줄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도 내가 아니라 너였을거야.
언제나 피 묻은 칼과 혼자라는 괴로움 속에서 울부짖던 너였기에
사람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이라는 따뜻함에 위로 받고 싶었겠지. 희망이라는 미래 속에서 살아가고 싶었겠지.
피 묻은 손을, 두려움과 고통에 떨리는 그 손을 누군가 잡아주길 바랬을거야.
하지만 네가 그 무엇보다 바랬던 것은 거창한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그저 '같이 살아가자' 라는 말 한 마디였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너는, 결국 너만의 복수를 완성해버렸구나..
곁에 있던 사람들을 튕겨내고, 혼자서만 죽어갔어.
언제나 나 대신 버림 받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너는 언제나 혼자였다.
누구보다 살고 싶어했었으면서,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어했었으면서
그런 네가 끝끝내 선택한 미래는 죽음이라는 복수였다.
그런데도 너는 그 마지막 순간조차 자신의 복수를 밝히지 않았지.
그건 너의 행동에 대한 속죄였을까, 아니면 너를 이렇게 만든 현실에 대한 용서였을까.

살아남은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연장해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중압감을 짊어진 채로.
살아남은 나는 너라는 끝의 연장선을 그리며 관계의 거짓이라는 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만들어낸 미래. 그리고 나 혼자서 살아가야 할 미래.

병실에서 일어서던 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죄의 선고를 받은 날,
나에게 남겨진 건 새롭게 새겨진 흉터와 대상을 잃어버린 경멸에 가까운 분노였다.
약을 먹은 순간부터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던 상실감과 외로움.
네가 끝까지 믿고 기대해왔던 사람이라는, 빛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답이 겨우 이거였냐.
이렇게나 너를 등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혼자서만 괴로워해왔던거냐.
...'같이 살아가자'는 그 한 마디조차 듣지못했으면서.

복수를 완성시킬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지 않았었던 사람들.
언젠가는 스스로를 죽이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관했던 사람들.
몰랐다는 변명을 할 거라면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어.
몰랐다면 왜 그렇게나 날 걱정하는 척 지껄였어?
그래, 최소한이나마 내뱉었던 말의 일관성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겠지.

아무리 네가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등진 사람들과 현실을 용서하지 않아.
고통 속에서 혼자 남겨졌다는 것은 너와 나 둘 다 마찬가지지만, 난 결코 네가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했던 선택은 하지 않아.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장났던 건 사실 네가 아니라, 나였을테니.
일그러짐을 가면 뒤에 숨긴 채 숨죽이고 있었을 뿐,
'같이 살아가자' 라는 말 한 마디에 치유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너와는 달라.
난 모든 잘못을 혼자 떠안고 죽어갔던 너처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복수의 피는 이제 내가 흘리겠지만, 칼날은 날 향한 것이 아닐거야.

남겨진 나에게 언젠가 왜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고 그런 일을 시도했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 선택마저 복수의 연장선임을 깨닫는다.
그대로 죽어버린다면 난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될테고,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그건 복수의 끝이 아닐테지.
그리고 남겨진 나는 누가 너를 등졌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테니까.
복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
그래, 너의 복수는.. 내가 이어갈게. 나의 복수도 함께.

죄인으로서, 복수자로서 그리고 배신자로서.
그것이 살아남은 내 죄에 대한 속죄야.
Posted by sey :